[인문]마리 앙투아네트
- 최초 등록일
- 2007.07.13
- 최종 저작일
- 2007.01
- 4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마리 앙투아네트의 생애에서 들여다 본 프랑스 혁명...
목차
들어가는 말
본론
결론
본문내용
(들어가는 말)
진실과 정치가 한 지붕 밑에 사는 일은 드문 법이고 선동을 목적으로 어떤 인물이 그려질 때에는 막일꾼과 같은 사람에게서 정의란 별로 기대할 수 없는 법이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단두대로 보내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 어떤 비방도 불사했다.(1)
앙투아네트는 왕권주의 위대한 성녀도 아니었고 창부, 혁명의 “매춘부”도 아니었으며, 중간 성격, 유난히 영리하지도 어리석지도 않으며, 불도 얼음도 아니고, 특별히 선을 베풀 힘도 없을 뿐더러 악을 행할 의사 또한 없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여인이었다.(2)
역사의 엑스트라에 어울리는 마리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몰고 간 것은 프랑스 왕비라는 특수한 신분이었다.
(본론)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이다. 앙투아네트가 루이 16세의 배우자가 된 것은 그녀의 나이 15세 때의 일이다. 프랑스 왕가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화해를 시도했던 쇼아즐 공의 노력은 왕태자 루이(미래의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혼인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러나 양국의 동맹은 프랑스의 국민사이에서 인기를 얻지 못했다.(3) 프랑스인들은 외국인왕비가 프랑스를 오스트리아의 속국으로 만들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프랑스 국경에 처음 당도했을 때 , 마리는 프랑스어를 몰랐다. 그녀는 베르사유 궁에서 미래의 시할아버지인 루이 15세와 다른 왕실가족들을 처음으로 대면했다. 그녀보다 한 살 많은 신랑은 수줍음을 타는 성격이었다.(4)
왕태자와 마리가 혼인식을 올린 날, 공개식사시간이 있었다. 그 때 새신랑 루이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식사를 했다. 좀 적게 먹으라고 조부 루이 15세가 충고 했을 때, 왕태자는 다음과 같이 반문했다. “왜요? 저는 배가 부를 때, 잠을 더 잘 자는걸요.”식사를 마친 후 궁정 조신들은 젊은 한 쌍을 침실로 인도했다. 그러나 이 신혼부부는 그 날 합방을 하지 않았다. 루이가 성적 불능이란 소문이 곧 나돌았고, 성미 급한 사람들은 왕가의 결혼이 사기라고 입방아를 찧었다.(5)
참고 자료
슈테판 츠바이크/ 박광자, 전영애 역(1992).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까치.
김복래(2006). 프랑스 왕과 왕비: 왕의 총비들의 불꽃같은 생애, 제5장 마지막 국왕 루이 16세, 북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