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연세대학교 사학과 발표 자료, 레포트 세조에 대한 가치관과 그의 생애
목차
1. 들어가는 말
2. 본문
(1) 왕위에서 멀어져간 세종의 아들 ‘수양대군’
(2) 왕권 강화의 강한 의지를 가진 정치가로서의 세조
(2)-1。즉위 전 세조의 정치적 활동과 이념
(2)-2。왕위에 오른 세조. 신권의 약화와 중앙집권화
(3) 자기의 죄 값에 시달린 불운한 인간으로서의 세조
3. 세조에 대한 역사적 평가
4. 마치는 말
<참고> 호칭의 변화 및 세조 연표
본문내용
세종의 둘째아들 수양대군은 처음에는 진평대군(晉平大君)에 봉해졌다가 1445년 수양대군(首陽大君)으로 고쳐 봉해졌다. 유교경전과 역사서는 물론, 역법. 병서에도 두루 통달했고, 풍수 또한 전문가 수준이었다고 잘 알려져 있다. 음악이론과 악기연주에도 능했으며 실로 당대의 어떤 문사에게도 뒤지지 않을 학문적 소양과 교양을 갖추었다고 한다. 수양대군의 아버지인 세종은 그의 자질을 높이 평가하여 여러 일을 맡겼는데, 궁정 안에 불당을 설피 하는 일과 불서의 번역을 감장(監掌)하고 향악의 악보도 감장. 정리하는 일들을 잘 수행해 내었다. 세종 때 규표를 바로잡기 위해서 삼각산 보현봉에까지 올라갔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또한 무인적 자질도 뛰어나 강궁을 다루며 명궁 소리를 들을 만큼 솜씨도 탁월했다. 이런 능력을 가진 수양대군은 과시욕도 강하고 자화자찬도 곧잘 했다. 그는 자신이 제왕의 풍모를 지닌 영웅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왕자와 신하들에게 이를 과시하고 상기시켰다. <세조실록>총서에는 그의 무용담을 보여주는 일화가 지리할 정도로 잔뜩 실려 있는데, 그 중 상당수는 자신이 평소에 수차 과시하고 그러고도 맘에 안 들어 직접 정리해 둔 것이다. 이런 그의 과시적인 행동의 배후에는 다분히 왕위계승을 둘러싼 형 문종과의 경쟁 내지는 반발의식이 깔려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병약했던 문종, 즉 세종의 첫째 아들이자, 수양대군의 형이었던 문종이 왕위에 올라야 한다는 생각에 대한 세종의 믿음은 확고한 것이었다. 세종은 태자(문종)가 병약한 것을 걱정하였는데, 그 이유로 세손(후의 단종)이 태어난 것을 기뻐한다.
참고 자료
민족문화연구회 편, ‘세종실록’, ‘문종실록’, ‘단종실록’, ‘세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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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희, “조선시대의 대간 연구”, 일조각,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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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희. “단종과 세조에 대한 역사소설의 검토;세조의 찬탈을 찬양한 이광수와 김동인의 친일 역사관”. 역사비평사 권호정보 16(`92.2).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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