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2년 농민항쟁
- 최초 등록일
- 2007.06.25
- 최종 저작일
- 2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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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후기 민란 중 1862년에 일어난 민란을 정리한 레포트입니다.
정말 열심히 준비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목차>
Ⅰ. 머리말
Ⅱ. 1862농민항쟁의 배경
1. 생산력 발달에 따른 농민층분해와 계급대립
2. 부세수탈
Ⅲ. 1862농민항쟁의 과정
1. 항쟁의 발생지역
2. 전개과정
3. 참가층과 주도층
4. 정부의 대책
1) 봉기진압과 주동자 체포
2) 삼정문란의 해결을 위한 개혁
Ⅳ. 1862농민항쟁의 의미
Ⅴ. 맺은말
본문내용
Ⅱ. 1862농민항쟁의 배경
1. 생산력 발달에 따른 농민층분해와 계급대립
1862년의 농민항쟁은 봉건사회 해체기의 사회모순이 전면화되는 상황에서 발행하였다. 우선 토지의 소유권을 둘러싼 소작인의 대지주 항조운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던 사실과 토지의 경영 및 향촌내의 유통권 장악과정에서 야기된 부농․상인․고리대업자 대 빈농의 이해관계의 대립을 들 수 있다. 이와 함께 국가의 민에 대한 경제적 지배의 표현인 부세제도의 모순과 재지세력의 불법적인 향촌지배라는 현상적인 문제가 표출되었다.
19세기 사회경제구조의 변동은 끊임없는 농법개량과 농업생산력의 발달, 상품화폐경제의 발전에 의해 야기되고 있었다. 특히 선진적 미작지대이고 유통경제가 크게 발달했던 삼남지역에서 농민층분해는 급속히 촉진되었다. 생산력의 발달에 따른 양극분해현상은 토지소유의 분화를 심화시켰다.
조선 후기에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하면서 토지의 집중현상은 더욱 급속도로 진전되었다. 농민 중에서도 상품화폐경제를 잘 이용한 자는 부농으로 성장하고 이를 토대로 토지를 매입하여 지주로 변신하기도 하고, 상인 중에서도 축적한 부로 토지를 매입하여 지주로 변신하기도 하였다. 고래대를 통해서도 토지매입이 늘어났다. 농민들은 부세부담이나 생계를 위해 고리대를 쓸 수밖에 없어서 자신의 토지를 내놓게 되었고 반면 이를 운영했던 지주․상인․부농층은 토지를 헐값에 매입하여 늘여나갔다. 특히 궁방이나 아문에 의한 신전개발이나 입안․절수․매매 등에 의한 토지확대를 꾀했는데 여기에는 농민들의 개간지, 경작지가 대상이 되면서 토지 소유를 늘여나갔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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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36, 국사편찬위원회.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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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한국사연구실, <1862년농민항쟁-중세말기전국농민들의반봉건투쟁>, 동녘출판사, 1899
정창렬, <조선후기 농민봉기의 정치의식>, 《한국인의 생활의식과 민중예술》, 대동문화연구총서Ⅰ,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