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말 근대국가 건설과정에서 나타난 정치적 균열
- 최초 등록일
- 2007.05.30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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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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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연구의 목적
2.기존 연구의 검토와 이론화의 문제
-당시 정치변동
-근대국가의 형성과정에 대한 비교사의 준거
스카치폴
아이젠 슈타트
외세
3. 갑오. 광무개혁 이전까지의 상황
4. 갑오개혁과 광무개혁에서 나타난 정치적 균열구조
5. 결론
본문내용
1.연구의 목적
- 개항 이후부터 식민지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정치변동을 근대국가 형성과정을 둘러싸고 나타난 왕과 관료 사이의 정치적 균열을 통해 설명. 근대국가 형성과정에서 국가 권력을 장악하려는 왕과 관료들 간의 현실 정치적인 대립, 국가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투쟁을 강조. 한말의 정치변동과정에서 나타난 핵심적인 정치적 균열은 국가 권력의 장악을 둘러싼 왕과 관료들 사이에서 권력 투쟁에서 발생했다는 것이 이글의 기본 논지.
- 기존의 연구들은 보수 대 개화라는 이념 대립을 강조.
1) 서구의 근대국가 형성과정에서 부르조아의 역할을 강조하는 휘그적 역사관 강조
2) 한국에서도 근대로의 이행과정, 근대국가 형성과정에서 서구 부르조아에 해당하는 개화 파가 존재했음
3) 한국의 경험이 서구의 보편적인 근대국가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음 -> 설득력없음
개항 이후 대부분의 지배세력들은 개화와 개혁이 시대적 과제라는 점에 동의하고 있었 기 때문에 당시 현실 정치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은 개화/반개화의 대립이 아니라 개화의 방법, 속도, 범위, 누가 개화를 추진 하였는가였음.
3. 갑오. 광무개혁 이전까지의 상황 : 개항 이후 관제를 개혁하고 다양한 개화정책을 시도
1880년 4월 영선사 파견, 1881년 1월 시찰단 파견, 1892년 12월 통리기무아문설치
-> 이러한 개화정책에 불만을 품은 구식 군대에 의해 임오군란 발생, 이후에도 개화정책은 대체를 이루면서 주도권을 둘러싼 정치적 균열 발생.
1882년 7월 군국기무처
-> 고종은 자신이 주도했던 개혁의 성과가 부정되고 친청 개화 관료들에 의해 국가기구가 장악되자 왕권 확대에 고심, 급진개화파와 민씨일가 및 친위세력들을 등용하여 세력확장 꾀함, 친청 온건 개화파와 친일 급진 개화파를 경쟁시키는 방식으로 왕권 확대 꾀함.
1884년 갑신정변
-> 청의 개입으로 진압, 온건 개화파의 권력 장악, 청은 대원군 환국시키고 국왕견제 및 국정 개입.
친청 개화파의 정국주도 약화(1858년 천진조약), 왕권강화 - 내무부 설치 (갑오농민전쟁을 발생시킨 원인중 하나)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