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조선 전기에는 지배계급 내의 모순과 관련하여 정치적 수난과 소외, 집권층에 대한 불만, 신분적 불우 등 방외인의 체제에 대한 반발과 일탈의 동기는 일정치 않고 그 행적이나 문학, 사상의 경향 역시 개인적 편향을 달리한다.
그 중에서도 김시습을 대표로 삼아, 불합리한 현실에 대항하는 그의 사상과 문학의 급진성, 진보성을 비롯하여 비판적인 사상과 자유롭고 저항적인 정신자세를 살펴보고자 한다.
목차
1. 방외문학
2. 김시습의 생애
3. 김시습의 작품
3.1 시세계
3.2 금오신화
4. 맺음말
본문내용
김시습은 1435년(세종 17년) 성균관 북편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벼슬을 하기는 했으나 무반집안으로 그나마도 그의 아버지는 음보(蔭補)로 얻은 무직(武職)에 병 때문에 취임하지 못했다. 이처럼 김시습의 집안은 조선관인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지만 시습은 어렸을 때부터 영민하여 신동이라 불리웠다. 율곡 이이(李珥)가 지은 「김시습전」에 따르면 태어난 지 여덟 달 만에 글을 알아 이를 기이하게 여겨 시습(時習)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또한 시습은 3세에 시를 짓고 5세에 《중용》,《대학》에 통달하였기에 세종대왕이 그 소문을 듣고 궁으로 불러들여 그의 실력을 보고서 “내가 친히 만나보려 했지만, 사람들의 이목을 놀라게 할까봐 걱정된다. 그 집에 일러서 그 재주를 숨기고 교양케 하는 것이 좋겠다. 그 덕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렸다가 장차 크게 쓰겠다.”라 하고 집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그때부터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오세(五歲)’라 불렀다 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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