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일본의 한국식민지화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07.05.06
- 최종 저작일
- 20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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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본의 한국식민지화에 대하여 쓴 레포트 입니다.
목차
1.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2. 을사조약 체결(1905)에서 한일합방
본문내용
일본의 한국 식민지화에 대해서
1876년(고종 13)년 체결된 강화도 조약 이후, 조선은 일본과 근대적 조약을 맺었고, 이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으로 식민지의 길을 걸었다고 할수 있다. 여기서는 청일 전쟁에서부터 한일합방에 이르는 시기동안 일어났었던 주요 사건들을 살펴보면서 조선의 일본 식민지화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1.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근대적 국가의 토대를 정비한 메이지 정부는 근대산업의 발달과 함께 해외로의 진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우선 조선을 개국시켜 일본제품의 판매시장으로 삼았다. 당시 조선은 아관파천, 갑신정변 등으로 淸의 세력 범위 내에 있었으므로 일본과 청국의 대립은 필연적으로 격화되었다.
1894년 조선에서 일어난 동학농민운동으로 인해 청국은 이를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조선의 남양만에 상륙하게 되고, 이때를 기다리고 있던 일본은 인천에 상륙하게 된다. 서울에 주병(駐兵)한 일본은 조선 내정의 청․일 공동개혁을 요구하였으나, 이것이 거부되자 일본의 단독개혁을 요구하였다. 때마침 진행 중이던 영국과의 조약 개정을 성공시킨 일본은, 조선이 청에 대한 복속 관계의 파기와 청군의 철병을 거절하자 조선 정부를 무력으로 억압하고, 7월 25일 풍도(豊島) 앞바다의 해전과 29일 성환(成歡) 육전에서 청군을 격파하였다. 8월 1일의 개전 후 9월에는 평양 육전과 황해 해전에서 우세를 확보한 일본은 랴오둥[遼東]반도의 탈취 계략을 세우고, 10월에 청국 영토에 진격하여 뤼순[旅順]학살사건을 일으킨 후 봉천(奉天) 남부를 제압, 이어서 웨이하이웨이[威海衛] 군항에서 북양(北洋)함대를 격멸함과 동시에 타이완[臺灣] 점령을 위하여 펑후섬[澎湖島] 작전을 벌였다. 일본군에게 연전연패한 청국은 95년 3월 강화 전권대사 이홍장(李鴻章)을 파견하여 30일에 휴전, 4월 17일 시모노세키[下關]에서 강화조약에 조인하였다. 일본은 ① 조선에서의 청국의 종주권 파기, ② 랴오둥반도와 타이완 ․펑후섬의 할양, ③ 배상금 2억 냥 지불, ④ 열국과 동일 특권을 인정하는 통상조약의 체결 등을 얻었으나 러시아 ․독일 ․프랑스의 3국 간섭 앞에 무릎을 꿇고 랴오둥반도는 반환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