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의 원도
- 최초 등록일
- 2007.04.30
- 최종 저작일
- 2006.10
- 14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한유라는 인물에 대한 내용, 당시 배경에 맞는 한유 문장의 특징, 그리고 한유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원도의 본문 전문부터 해설까지 내용이 풍부합니다 ^-^
목차
1. 한유의 생애
2. 한유의 사상
3. 당대의 산문과 고문운동
4. 원도의 본문
5. 원도의 감상
본문내용
2. 한유의 사상
한나라의 유학은 유교 경서의 자구를 자세하고 정확하게 풀이하는 것, 즉 훈고학 일변도였다. 실천의 측면에서는 형식적인 예에 치중했다. 이에 따라 이후 위진남북조 시대, 수당 시대 거치면서 불교와 도가 사상이 유학을 압도했다. 경서의 자구 풀이와 형식적인 예에 치중하다보니, 사람들의 정신적, 지적 관심과 요구에 제대로 응할 수 없었던 것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유학의 위상이 그다지 크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정치적으로, 특히 관료 선발 시험에서는 유학이 절대적이었다. 622년에 과거 제도가 다시 시행되고 오경이 기본 교재로 채택되었다. 628년에는 당태종이 공자를 기리는 묘를 세우도록 했고, 630년에는 유교 경서의 공식적인 표준 주석서를 편찬할 것을 유학자들에게 명했다. 이에 따라 공영달, 안사고 등이 중심이 되어 오경정의(五經正義)를 완성했다. 《오경정의》는 한, 위진, 육조 시대의 경서 주석 가운데 훌륭하고 대표적인 것들을 가려 뽑아 수록함으로써, 경서를 둘러 싼 여러 학설의 표준화, 통일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러한 경서 주석의 공식적 표준화는, 이전 시대까지의 학문적 성과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는 의의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요컨대 사상적인 발전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이런 가운데 당나라 말기에 이르러서야 새로운 사상 경향이 등장했다. 대문장가로도 유명한 한유(韓愈: 768-824)가 그 시작이다. 한유는 원도(原道)라는 저술에서 요, 순, 우, 탕, 문, 무, 주공, 공자, 맹자로 이어지는 유교의 참된 도(道)의 계승 과정을 거론하고, 맹자 이후 도는 전해지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내가 도라고 일컫는 것은 도가나 불가에서 이제까지 말하던 도가 아니다.` 그의 이런 말은 불교와 도가 사상이 지배적이던 현실을 반증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