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려사]왕실과 귀족
- 최초 등록일
- 2007.04.27
- 최종 저작일
- 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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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시대 왕실과 귀족에 대한 리포트입니다.
목차
Ⅰ. 序論
Ⅱ. 本論
1. 왕실 호국불교
2. 천태종의 개창
3. 무신정권 아래에서의 불교
4. 민중불교 항쟁과 귀족불교
5. 고려의 미륵신앙
Ⅲ. 結論
Ⅳ. 參考文獻
본문내용
Ⅰ. 序論
신라 하대에는 정치·사회적 변동과 관련하여 사상적 측면, 특히 불교 방면에서도 그 전환이 전개되고 있었다. 즉 신라 중대 이래로 불교의 사회적 기능 중 실천신앙적인 측면까지도 포괄하면서 왕실과 진골귀족층에 의해 체제이념으로 받아들여진 화엄종(華嚴宗)·법상종(法相宗)·신인종(神印宗) 등 교종 계통의 종파세력이 8∼9세기에 사상적으로 차츰 보수적인 경향을 띠게 되고, 또한 그 사회적 기반을 상실함에 따라 불교대중화 과정에서 피지배층에까지 확산된 미타·미륵신앙 등의 정토신앙(淨土信仰)이 특정 종파와의 관련 없이 지방사회의 토착세력과 농민·천민층을 중심으로 이 시기에 광범위하게 유행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당시의 신앙결사(信仰結社)라든가 향도조직(香徒組織), 그리고 지방토호층이 주축이 되어 조성한 미륵불(彌勒佛) 등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신라 하대의 불교계의 변동양상은 지배층과 피지배층간에 벌어진 사회적 간격을 가장 잘 반영한 것이며, 이로 인해 야기된 사상적·신앙적 공백을 새로운 사조로서 전래된 선사상이 메워주었던 것이다. 선사상이 처음 전래되었을 때 신라왕실의 왕권강화책과 관련하여 이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기도 하였지만, 신라 말에는 차츰 지방호족이 지방사회의 실질적인 지배자로서 독자적인 기반을 구축하게 되자, 선사상은 이들의 분권적 경향에 대한 이념으로 채택되었다. 심지어 선사상에 바탕을 둔 일부 선문(禪門)은 그들이 소재하고 있던 지방사회를 정치적·경제적·군사적 측면에서 장악함으로써 독자적인 세력권을 형성할 정도로 급성장하게 되었다.
따라서 고려가 성립된 이후 집권체제를 구축하면서 사상적 측면과 관련하여 가장 주목되는 개편대상은 지방호족과 결합하고 있었던 선문세력이었다.
Ⅱ. 本論
1. 왕실 호국불교
송악의 호족 세력이었던 왕건이 918년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 정권을 세우고, 936년 후삼국을 통일하면서 고려 시대는 시작된다. 건국기에 왕건은 동요하는 민심을 무마하고 지방 호족 세력을 회유하기 위해 일련의 회유 정책으로써 불교를 숭봉하는 정책을 폈다. 그래서 즉위 원년(918)에, 신라 봉건 지배 계급의 이익을 위해 연례행사로 치러졌던 왕실 주체의 호족불교 행사인 팔관회 제도를 받아들였다.
참고 자료
채상식, "고려시대 불교의 전개와 성격" {한국사: 중세사회의 성립} 한길사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