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조선시대 과거제도
- 최초 등록일
- 2007.04.27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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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시대 과거제도에 관한 리포터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조선시대 과거제의 특성
Ⅲ. 조선시대 과거제도의 개방성과 폐쇄성
Ⅳ. 조선시대 과거제도의 사회적 기능과 성격
Ⅴ. 결론
본문내용
朝鮮時代 科擧制의 전반적인 특성으로는 첫째, 조선조의 科擧制는 전제왕권을 확립하기 위한 수단으로 운영되었다. 국왕이 전국토를 직접 통치하기 위해서는 그를 보좌하는 신료들이 필요하였다. 科擧制度는 국왕이 이러한 신료들을 선발하는 국가시험제도였다. 과거시험에 국왕이 친임하는 전시가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국왕이 직접 참여하지 않는 초시와 복시에 있어서도 국왕이 임명하는 령관이 시험관이 되게 되어 있었다. 과거시험으로 뽑힌 국왕의 신료, 즉 官僚나 관리들은 中央과 地方의 관료기구를 구성하여 대민통치에 종사하게 되어 있었다.
둘째, 조선조의 科擧制度는 능력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고려. 朝鮮社會는 기득권층인 양반의 신분이 보장되는 身分社會였기 때문에 세관으로서의 음서제와 세록으로서의 과전제가 실시되는 반면, 國王은 官僚社會의 能力있는 새로운 官僚들을 부단히 충원함으로써 국가의 청신한 기풍을 불러일으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 혈통주의와 능력주의가 대립적으로만 운영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국왕은 국가의 藩屛으로서 양반층의 기득권을 보장해 주면서도 그들을 관료로 임명하는 데 있어서는 비양반 자유민과 함께 공개경쟁을 통하여 관료를 선발하였던 것이다. 여기에는 철저한 시험주의가 적용되었다.
셋째, 조선조의 科擧制는 문치주의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문신이 국가의 정치를 주도하는 문치주의를 기조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文科, 武科, 雜科, 중문과가 가장 중시되었으며, 다른 科擧에는 없는 예비시험으로서 생원․진사시가 특별히 개설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文科 준비를 위한 교육기관인 中央의 성균관, 四學과 지방의 향교가 국가경비로 운영되고 있었다.
참고 자료
1. 한국역사연구회,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청년사, 1996
2. 김경용, 연세대학교 대학원, 조선시대 과거제도의 교육적 연구, 1998
3. 이성무, 한국의 과거제도, 집문당, 2000
4. 한국 고문서학회, 조선시대 생활사, 역사비평사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