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고창군(高敞郡)
- 최초 등록일
- 2007.03.29
- 최종 저작일
- 20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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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성밟기
진흥왕과 선운사전설
밤내골 달래의 효심 전설
검당마을과 염정설화
1.고창 신재효 고택(高敞申在孝古宅)
2.동리 신재효(桐里 申在孝, 1812~1884)
3.도산리 지석묘(道山里支石墓)
4. 고창 상갑리 지석묘군(高敞上甲里支石墓群)
본문내용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도산리 536 있는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1981년 4월 1일 전라북도기념물 49호로 지정되었다. 고창에서 서쪽으로 약 4㎞ 떨어진 도산리는 동서로 뻗은 나즈막한 구릉을 옆에 끼고 그 남향 기슭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으며, 마을 꼭대기 능선에는 거대한 탁자식 고인돌과 함께 바둑판식 또는 개석식(蓋石式)이라 여겨지는 고인돌들이 한군데에 모여있다. 특히 여기의 탁자식 고인돌은 알고있는 바로는 한반도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전형적인 탁자식으로 그 규모와 독특한 축조방식이 눈에 띄는 매우 특출한 고인돌이다. 청동기 시대의 지석묘라고도 불리는 이 고인돌은 지상높이 약 1.9m, 너비 2.5m에 25㎝ 정도의 균일한 두께의 오각형과 장방형 굄돌 두 장을 65㎝ 정도의 간격을 두고 수직으로 세우고 그 위에 가로 3.44m, 세로 2.9m, 두께 60㎝ 정도의 판석을 얹었다.
3. 고창 상갑리 지석묘군(高敞上甲里支石墓群)
고창 고인돌군은 상갑리에 걸쳐 있는 청동시대 고인돌군으로서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와 함께 1994년 9월 27일 사적 391호로 지정되었다. 고창읍 죽림리와 아산면 상갑리 일대의 매산(梅山)마을을 중심으로 동서에 걸쳐 표고 15~50m 내에서 군락을 이룬다. B.C. 400년~B.C. 100년경(청동기시대 말~초기 철기 시대)까지 이 지역을 지배한 청동기시대 족장의 가족묘역이라고 한다.
성밟기
이 놀이는 모양성(牟陽城-고창읍성) 위를 걸어서 노는 것인데, 민속신앙에 놀이의 성격이 겸해진 형태이다. 성밟기는 봄부터 가을까지 수시로 행하지만 윤달에 하면 더욱 좋고, 윤달 중에서도 윤삼월이 특히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추엿새․열엿새․스무엿새와 같이 여섯수가 들어 있는 날이면 저승문이 활짝 열린다 하여 더욱 성황을 이룬다. 그러나 근래에는 고창군민의 날인 9월 9일에 많이 하게 되었다. 이 성밟기는 부녀자들이 주로 하며, 먼 지방에서까지 오고, 개인보다는 단체로 하는 경우가 많다. 성 위를 한 바퀴 돌면 다리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며, 세 바퀴 돌면 죽어 저승길이 훤히 트여 극락에 갈 수 있다고 한다. 성밟기를 하는 부녀자들은 각기 머리 위에 목침덩이만한 돌을 하나씩이고, 왼쪽 성으로부터 출발하여 돈다. 가다가 중간에 있는 6개의 곡성(曲城)과 치성(雉城)에 이를 때마다 미리 준비한 곡식봉지나 동전 몇 푼씩을 놓고, “저승길 노수요.”하면서 합장 삼배하고, 오르막길에 이르면, ‘압록강 건너서’, ‘두만강 건너서’ 저승 극락에 가도록 해달라고 기원한다. 전설에는 이 놀이가 이 성을 쌓을 때 호남 각지의 장정을 다 모으고도 인력이 모자라 여인들까지 동원하여 돌을 나르고 밟아 다진 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