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조의 지치주의
- 최초 등록일
- 2007.03.27
- 최종 저작일
- 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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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주자학이 우리 나라에 들어온 것은 고려말이었으나 널리 보급되지는 못하였고, 조선 초기에 와서도 사장(詞章)의 학만이 높이 숭상되었기 때문에 과거에 있어서도 이것에만 치중하였고 도학(道學)은 일반적으로 경시되었다. 그러나 조광조의 도학정치에 대한 주창은 대단한 것이었고, 이러한 주창을 계기로 하여 당시의 학풍은 변화되어갔으며, 뒤에 이황(李黃), 이이(李珥) 같은 학자가 탄생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도학정치는 조선시대의 풍습과 사상을 유교식으로 바꾸어 놓는데 있어서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 즉, 조선시대에 일반서민들까지도 주자의 <가례 家禮>를 지키게 되어 상례(喪禮)를 다하고 젊은 과부의 재가도 허락되지 않게 되었다.
목차
조광조의 개인약력
조광조의 도학정치 일반
지치주의에 대한 조광조, 이이, 이언적의 학문 내용
본문내용
유교로서 정치와 교화의 근본을 삼아야 한다는 지치사상에 입각한 왕도정치를 실시했다. 그는 유교로써 정치와 교화의 근본을 삼아야 한다는 지치주의(至治主義)에 입각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역설하였다.
지치주의 *至治主義*
조선 전기의 철학자, 정치가인 조광조(趙光祖)를 위시하여 전개되는 일련의 정치사상이다. 그 내용은 인간에 의하여 다스려지는 이 세상이 바로 하늘의 뜻이 펼쳐진 이상세계가 되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으로서, 이는 중국의 성리학이 수용되고 정착되면서 나타난 한국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고려 말에 수입된 성리학이 뿌리를 내리면서 나타나는 하나의 특징은 `천인무간(天人無間)`의 인간존재를 자명한 명제로 전제하였다. 하늘과 사람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합일체로 보는 이 전제는, 하늘의 뜻이 인간의 일과 분리되지 아니한다는 `천리불리인사(天理不離人事)`의 명제로 발전하여 사람에 의하여 다스려지는 세상이 하늘의 뜻이 실현된 이상사회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정치적 당위성이 도출됨으로써 지치주의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지치란 《서경》군진편(軍陳篇)의 `지치형향(至治馨香) 감우신명(感于神明)`에서 따온 것인데, 잘 다스려진 인간세계의 향기는 신명(神明)을 감명시킬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치주의 운동이 우리 나라에서는 하늘의 뜻이 실현된 이상사회의 건설을 목표로 하는 정치적 실천운동으로 구체화되었다. 유가에서의 이상사회는 요순시대의 대동사회(大同社會)를 말하므로 지치주의 운동의 내용은 정치적 실천에 의하여 당시의 군민(君民)을 요순시대의 군민으로 만들어 직접 요순삼대의 일월(日月)을 눈앞에 출현시키려는 이상정치의 현실적 실천운동인 것이다. 본래 사람들은 하늘과 사이가 없이 직접 연결되어 있는 존재이고, 사람의 일은 하늘의 뜻과 떨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도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에 전개된 지치주의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조광조의 지치주의 운동
지치주의의 전제가 되었던 `천리불리인사`는 `천인무간`을 전제로 하여 도출된 명제이므로 지치실현의 근본은 `천인무간`의 인간존재를 실천하는 개인적 수양에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회는 개인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수양에 의하여 하늘과 하나인 존재를 실천하는 개인들만으로 사회가 구성될 때 지치의 사회는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참고 자료
송명성리학 - 예문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