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금석문
- 최초 등록일
- 2007.02.27
- 최종 저작일
- 2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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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전공레포트라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목차
1.서론
2.본론
1) 영일 냉수리 신라비
2) 울진 봉평 신라비
3) 울주 천전리 각석
4) 진흥왕 순수비
5) 단양 적성비
6) 남산 신성비
7) 6세기 신라 금석문의 특징
3.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고대는 시대의 특성상 관련 사료가 지극히 빈약하고 그나마도 신빙성의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이는 고대사를 공부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이라 할 수 있다. 한국 고대사를 연구하는 기본 자료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이다. 그러나 이 두책은 삼국시대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뒤인 고려 시대 때 여러 전승자료를 모아 편찬한 사서이다. 다시 말해 일차 가공하여 기술한 책이다 보니, 고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료의 빈곤을 해결해 주는 것이 금석문이다. 일반적으로 금석문이라 함은 쇠붙이에 글씨를 새긴 금문과 돌에 명문을 기록한 석문을 총칭하는 것으로써, 금속기명․석각문․석경․석조물조성기․석기문․석비류 등의 명문이 이에 해당된다. 이러한 금석문은 그 내용 뿐만 아니라, 기록의 형태, 금석문에 부속된 문양 및 조각, 금석 기록물의 형상과 용도 등을 통하여 당시의 문화 및 사회상을 보여주는 제 1차 사료라는 점에 그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그리고 금석문은 뒷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은 당시의 생생한 자료이다. 그래서 때로는 문헌자료에서 찾아볼 수 없는 사실을 전해주기도 하고, 문헌자료이 잘못을 바로 잡아주기도 한다.
그러나 생생한 만큼 제약도 많다. 금석문은 후대인을 위해 남겨놓은 것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어떤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 만든 것이다. 그래서 제한된 정보만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아 반드시 기존 문헌자료와 비교 검토해야 한다. 또한 오랜 세월 속에서 조각나거나 희미해진 글자를 올바르게 읽어내는 작업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럼, 신라의 금석문들 중 몇 가지에 대하여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신라 중고기 사회의 특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Ⅱ. 본론
1. 영일 냉수리 신라비
영일 냉수리 신라비는 1989년 연구 결과가 발표됨으로써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게 되었다. 비문의 서체는 해서체가 기본 서체로서 여기에 예서체 및 초서체가 보이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신라에서 사용하기 쉬운 해서체가 먼저 수용되었으나, 당시 예서체로부터 탈피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해서체와 예서체가 함께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았다.
비의 건립연대에 대해서는 비문에 보이는 ‘내지왕(乃智王)’, ‘계미년’, ‘至都盧葛文王’ 등이 그 단서가 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내지왕은 『삼국유사』왕력에서 보이는 “訥祗麻立干 一云內只王”과 관련시켜 눌지왕으로 보았으며, 至都盧葛文王은 『삼국사기』, 『삼국유사』에서 지증왕을 智度路라고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계미년을 443년설(눌지왕 27)과 503년설(지증왕 4)로 추정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내지왕의 왕호는 광개토대왕릉비, 중원고구려비, 울진봉평비 등에 의하면 마립간 시기의 왕호가 아니라, 그 이전의 왕호가 되므로 계미년은 383년(내물왕 28)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