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답사 보고서_사천
- 최초 등록일
- 2007.02.20
- 최종 저작일
- 20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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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2007년 0월 0일부터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사천시 곤양면 일대를 답사했다.
문헌조의 역할은 이 지역에 있는 문헌자료들을 살펴보고 비석의 경우에는 탁본을 떠야하는 것이다.
첫째날, 보물 제 614호로 지정된 곤양면 홍사리에 있는 매향비를 찾아갔다.
매향비란, 향나무를 땅에 묻고 그 위에 비를 세워두는 것인데, 다시 말해 내세의 발원을 위하여 향을 강이나 바다에 잠가 묻고 그 사실을 돌에 새겨 기념하기 위해 세우는 비를 말한다. 매향은 미륵보살을 공양하여 장차 그 하생성불(下生成佛)을 축원하고 도솔천의 미륵정토에 왕생하고자 하는 불교행사로서 미래 구복적인 성향이 강한 미륵신앙의 한 형태로 파악되고 있다고 한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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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977년 6월 발견되었으며 이 매향비는 한 개의 자연석에 15행 202자를 새긴 석비로 서두의 비석의 제목은 ‘천인결계매향원왕문(千人結?梅香願王文)’으로 4,100명이 모여 침향목(沈香木)을 묻어서 미륵불(彌勒佛)이 나타나 용화삼회(龍華三會)하기를 기다려 대원(大願)이 이루어지도록 기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즉 4,100명이 결계하여 내세의 행운을 축언하며 왕의 만수무강과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한 민중정신의 표출이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사천 매향비는 높이 1.6m, 너비 1.3m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달공(達空)이 비문을 짓고 수안(手安)이 비문을 썼으며, 김용(金用)이 명문 각자하였고 대화주(大化主) 각선(覺禪)이 편안하도록 지킨다고 하였다.
비문의 말미에는 `洪武二十年丁卯八月二十日埋` 로 되어 있어 고려 말 우왕 13년(1387)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석비는 장방형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하여 비문을 각자하였으므로 비면(碑面)이 자연면 그대로 굴곡이 많다. 따라서 글자 크기가 같지 않고 정간(井間)도 없어서 가로ㆍ세로가 맞지 않으며 자수(字數) 또한, 각 행마다 같지 않게 되어 있으나 글자 모두 고졸(古拙)하여 당시의 지방자체(地方字體)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첫날부터 날씨가 너무 좋지 않아 걱정하면서 탁본 뜰 준비를 했다.
비석이라면 반듯하고 평평할 줄 알았던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비석이 크고 표면이 많이 울퉁불퉁하였다. 그래서 반으로 나누어 두 차례에 걸쳐 탁본을 떴다.
탁본을 뜰 비석의 위치에 한지를 대고 테이프를 붙여 고정시켰다. 그런 다음 한지가 흠뻑 젖도록 물을 뿌리고 공기가 들어간 곳은 손수건 뭉치로 두드려 정돈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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