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로마제국 관련 발제문입니다. 좋은 글이니,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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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로마 공화정(共和政, Res Publica)의 형성
2. 로마 공화정의 위기: 개혁과 분열, 그리고 몰락
1) 티베리우스 그라쿠스(Tiberius Gracchus)의 개혁.
2) 가이우스 그락쿠스(Gaius Sempronius Gracchus)의 개혁
3) 내전과 공화정의 몰락
Ⅱ. 로마 제정의 흥망
1. 아우구스투스의 원수정(元首政)과 ‘로마의 평화’(Pax Romana)
2. 3세기의 위기(Thrid-Century Crisis)와 제국 재편
3. 로마 제국의 몰락과 원인들
Ⅲ. 로마 제국의 계승자들(translatio imperii)
1. 비잔티움 제국
2. 카롤루스 제국
3. 신성로마제국
본문내용
1. 로마 공화정(共和政, Res Publica)의 형성
전승에 따르면 로마인들은 기원전 509년 에트루리아 출신 마지막 왕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를 축출하면서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이라는 새로운 체제를 출범시켰다. 공화정에서는 정무관(magistratus), 민회들(comitia), 원로원(senatus)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공적인 일(res publica)을 처리해 나갔다. 로마 광장(Forum Romanum)은 로마 공화정의 산실이자 상징이었다.
왕을 대체한 고위 정무관인 콘술은 귀족(patricii, patricians)출신자들 중에서 2인이 1년으로 임기로 왕의 통치권(imperium)을 행사했다. 콘술 이외에도 프라이토르, 콰이스토르, 아이딜리스, 딕타토르, 켄소르 등의 정무관직이 만들어 졌다. 그러나 귀족들의 콘술직 독점에 불만을 품은 평민들이 이른바 ‘신분 투쟁’을 벌이자 기원전 287년에 콘술직 두 자리 중 한 자리는 평민출신자(plebs)에게 할당되었다. 이때부터 평민 출신으로 콘술직을 역임해서 귀하게 된 사람들(nobiles)이 여전히 비천한 자들(ignobiles)와 구별되어 신귀족층을 형성했다. 결국 정무관직은 혈통귀족(patricii)이나 관직귀족(nobiles)의 차지였다.
민회는 정무관 선출, 입법, 사법, 중요 국사 결정권을 가진 로마 인민의 총회였다. 정무관직의 피선거권이 혈통귀족(patricii)이나 관직귀족(nobiles)에게 독점되기는 했지만 그들을 선출한 것은 로마 인민이었다. 로마 민회의 특징은 오직 하나의 민회(ekklesia)가 있던 아테네와 달리 4개의 민회(쿠리아회, 켄투리아회, 트리부스 인민회, 트리부스 평민회)가 있어서 각기 자신이 속한 쿠리아, 켄투리아, 트리부스 별로 투표에 참여할 수 있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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