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에서의 미국-오키나와 미군기지를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 2006.12.16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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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오키나와 미군기지를 중심으로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역할을 살펴보았습니다.
목차
1. 서론
2. 오키나와 미군기지
-ⅰ 성립 배경
-ⅱ 미군기지의 역할과 문제점
-ⅲ 기지 이전 문제
3. 결론
4.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서론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미 점령군이 맥아더 사령관을 선두로 일본 본토에 처음 발을 내딛은 것은 1945년 8월 30일 오후 2시라고 기록되어 있다. 아마도 당시에는 그 누구도 미군이 60년이 넘는 장기간 동안 일본에 주둔하게 되리라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으로 일본이 다시 독립국가가 되었음에도, `미 점령군`은 `주일미군`으로 변신, 오늘날까지 일본에 잔류하게 된다. 주둔의 명분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생과 1950년 한국전쟁 발발 등 동북아의 위태로운 안보 상황과 격화되는 냉전 체제 속에서 일본 열도를 대소 봉쇄의 전초기지로 활용하고자 한 미국의 전략적 판단의 산물이었다. 구 미일안보조약에서 `극동의 방위`를 역할로 명시하고 있는 주일 미군의 성격이 급격히 변하게 된 계기는 베트남 전쟁이었다. 매일같이 엄청난 양의 폭탄을 무차별 쏟아 부었던 미 전투기의 90%는 일본의 미군 기지로부터 이륙하거나 연료를 공급받았다. 베트남 전장에서 부상당한 미군의 70%는 일본의 미군 기지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당시까지 미군의 지배하에 있던 오키나와는 물론이요, 본토까지 후방기지로서 총동원되어 가동되었던 것이다. 오키나와 기지가 없는 베트남 전쟁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그 역할은 지대했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이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미군 기지의 전략적 중요성과 주일 미군의 위상은 한층 높아진 것이다. 소련이 해체되고 냉전 체제가 종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일 미군이 여전히 주둔하고 있는 것도 베트남 전쟁의 `학습 효과` 때문이다. 실제로 걸프전부터 이라크 전쟁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미군 기지의 역할은 탈냉전 이후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주일 미군의 대부분이 주둔하고 있는 오키나와 미군기지에 대해 알아봄으로써 그곳에서의 미군기지의 역할과 그로 인한 문제점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오키나와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이는 근래 주한 미군의 여러 사건들에 비추어 볼 때 우리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참고 자료
양기호 외. <<일본 지역연구(上) - 오키나와·오이타·가나자와 지방을 중심으로>>. 서울:川花, 2004.
남창희, 이종성. <오키나와 주일미군 기지조정 정책결정 요인에 대한 연구: 미군, 일본정부, 지자체, 주민 간의 협상 과정을 중심으로>. <<현대일본학회>>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