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의 국가제도
- 최초 등록일
- 2006.12.14
- 최종 저작일
- 20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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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요즘 대하사극 `대조영`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죠? ^^;
바로 그 발해라는 나라의 국가제도에 대해서 정리를 해놓은 자료입니다.
그림과 도표까지 삽입하여, 큰 도움이 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많은 이용 부탁 드립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정치제도의 확립에 관하여
3. 중앙통치제도
4. 지방 정치제도
5. 군사 제도
6. 마치며
■ 참고문헌 ■
<도표 및 그림>
본문내용
1. 들어가며
국가가 성립된다면 그것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한 국가 체제 역시 성립하기 마련이다. 초기의 험난한 역경을 이겨내고 건국된 발해 역시 처음에는 일종의 무력 집단에 불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왕을 칭하고 국(國)을 칭하려면 국가를 통치할 기구들이 필요 했을 것이다. 오늘 이러한 고대 국가 발해의 국가제도, 통치제도를 중심으로 살펴보면서 발해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다.
2. 정치제도의 확립에 관하여
발해의 통치 제도 정비는 대체로 발해의 3대왕인 문왕 대(代)로 보고 있다. 일단 1대 고왕과 2대 무왕의 시대는 무치(武治)를 계속 하던 시기로 그 중앙행정 기구가 아직 완성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문왕이 즉위한 다음해인 대흥 2년(739년) 일본에 파견한 발해사신 서요덕의 관급이 약홀주도독(若忽州都督) 이었다는 것을 통해 이시기에 주․현제도가 있었다는 것을 간접 확인 할 수 있다. 또한 문왕 때 보낸 사신을 통해서도 확인 할 수 있다. 양승경은 중정대(中正臺) 속관 소정(少正)이었으며 왕신복은 정당성(政堂省) 속관 좌윤(左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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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중앙통치제도
▷ 국왕 : 발해 역시 고대국가였으므로 국가의 최고 통치자는 왕이었다. 발해에서는 조회시 존칭으로 ‘성왕(聖王)’이라고 하였고 비문에는 ‘聖’, ‘皇’, ‘王’이러 쓰고 그 앞에 한칸을 띄워 두었다. 발해 언어로 ‘가독부(可毒夫)’라고 하였고 기록으로 남길때는 ‘기하(其下)’라고 썼다. 국오아 스스로 연호(年號)와 존호(尊號)를 사용했으며 죽은 뒤에는 시호가 있었다. 국왕의 무덤은 능(陵)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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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발해사 편집실,『발해사 연구를 위하여 1』, 천지출판, 2000
사회과학원역사연구소,『발해사』, 한마당, 1989
王承禮, 역 송기호,『발해의 역사』, 아시아문화연구소, 1987
유득공,『발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