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및 희곡 감상]고도를 기다리며
- 최초 등록일
- 2006.12.13
- 최종 저작일
- 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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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부조리극의 대표,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를 희곡과 연극을 감상, 분석한 글이다.
`기다림`을 중심으로 기존의 설명(사무엘 베케트, 부조리극에 관한 학문적, 상투적 설명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은 제외하고 유니크한 본인만의 관점에서 감상했으며, 기다림에 대한 깊은 생각을 동반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그 해 여름은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정사각의 교실 안에 삼십 명이 빼곡히 앉아 있었다. 때때로 선풍기가 무겁게 정체된 공기를 휘저었다. 그러나 진한 햇빛과 숨 막히는 공기들은 다시 제 자리를 찾아 고이기를 반복했다. 해방은 존재할지라도, 그 끝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해방의 존재는 오히려 현재의 부재를 부각시키기만 한다. 굉장한 지루함이었다. 시시한 말장난과, 혹은 그 기다림이 일 년 더 지속될지 모른다는 농담에 스스로 경악하는 놀이를 즐겨 했다. 무엇을 기다리는가?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화려하고 완성된 미래를 기다리는 중이 아니었다. 기다림의 끝에 오는 것이 ‘완전함’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긴 기다림에 비해 분명 결말은 시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다려야 했다. 그것만이 지금의 어둡고 긴 기다림의 끝에 있는 빛이요 해방이자 출구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다림의 끝이란 <현재의 종말>이기만 하면 된다. 이것은 나의 기다림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읽은 기다림과 닮았다.
극의 전체에서 고고(에스트라공)과 디디(블라디미르)는 오기로 약속한 ‘고도’를 기다리며 지루한 시간을 보낸다. 아니, 필사적으로 지루한 시간 보내기를 하고 있다. 중간에 뚱뚱하고 성격이 포악한 포조와 그의 노예로 보이는 럭키가 1막과 2막에서 각각한번씩 지나간다. 두 번째 막에서 포조는 장님이 럭키는 벙어리가 되어 있다. 고도 밑에서 일하고 있다는 소년이 각 막에 한번씩 나와 오늘은 고도가 오지 않으며 내일은 반드시 올 것이라는 말을 전한다. 마지막에서 고고와 디디는 시도조차 어설픈 자살시도를 해보고, 둘의 기다림은 계속된다.
고고와 디디는 광대를 연상케 한다. 어수선하고 수선스러우며 웃음을 유발하는 빠른 스타카토 말투에 모자를 가지고 장난할 때면 공연 중인 삐에로 같다. 그러나 어두운 배경과 상반되는 그들의 가볍고 호들갑스러운 몸짓들은 그 어두움에서 빠져나오거나 반대되려는 처절함처럼 보인다. 삐에로를 볼 때, 우리는 웃음을 터뜨리기보다는 우스운 분장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숨어있는 부정적인 요소들을 느끼고 겁을 먹게 되는 것처럼(어떤 아이들에겐 삐에로가 공포의 대상이기까지 하다) 디디와 고고에서도 그런 요소를 느끼게 된다. 쾌활한 어조 속에서 결코 유쾌함을 느낄 수 없고, 그만 갈까? 가자. 는 대사에서 움직이지 않는 무표정함이 그렇다.
참고 자료
사무엘 베케트 평전,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 부조리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