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제목 그대로 신라 시대에 지어진 처용가와 고려 시대에 지어진 처용가의 차이점을 적은 글 입니다. 교수님들처럼 전문적인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도움이 될 겁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신라 처용가의 기능
2. 고려 처용가의 제의성과 갈래
1) 고려 처용가의 제의적 구조
2) 고려 처용가의 갈래적 특징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처용의 정체에 대한 견해는 네 가지로 집약된다. 곧 ⑴ 벽사가면설 ⑵ 용신설 ⑶무속설 ⑷역사적 실존인물설이 엇갈리고 있으며, 서로 복합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 중에서 ⑴⑵⑶은 민간신앙·무속신앙·불교신앙과 관련시키는 믹속학적·종교학적 관점이고, ⑷는 역사학적 관점이다.
이중에서 벽사가면, 용신, 무속설을 통합시킨 견해는 시도되지 않았는데, ‘굿’의 맥락에서는 삼위일체적 통합이 가능하다. 처용굿의 개념을 설정하면 처용은 용신이고, 용신을 모시는 무격이고, 용신의 신체가면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장조사를 통해 처용이 출현한 개운포의 정확한 장소는 오늘날 울산의 처용암이고, 처용암에는 처용의 신당인 처용당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터이므로, 처용암 내지 처용당으로부터 서라벌로의 이동을 무당의 이동으로만 보는 견해들은 현상의 핵심을 놓치고 있다. 무당이 이동하는 것은 신의 이동을 의미함을 오늘의 굿을 통해 관찰할 수 있는 바. 처용의 이동을 무당의 이동으로 보고서 처용의 결혼을 무당의 결혼으로, 처용의 가무를 무당의 가무로, 처용의 역신 퇴치를 무당의 그것으로 보는 태도를 취하면, 처용설화는 무당의 이야기이자 영웅의 이야기, 무조의 본풀이인 신화나 서사무가가 된다. 그러나 처용의 이동을 용신의 이동으로 보면, 처용의 결혼은 용신의 신성결혼이 된고, 처요의 가무는 용신의 가무가 되며, 처용의 역신퇴치는 용신의 그것이 되어, 처용설화는 행위로 이루어진 처용놀이굿을 말로 풀이한 이야기가 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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