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표트르 대제의 청동기마상
- 최초 등록일
- 2006.11.10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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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표트르 대제의 청동기마상을 보고 분석한 글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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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뜨 -뻬쩨르부르그의 탄생과 뾰뜨르 대제
뾰뜨르 대제의 청동 기마상의 문화적 의미
마무리 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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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세에 러시아 왕위에 오른 예까쩨리나 2세는 아무런 정통성을 가지지 못한 여왕이었다. 러시아가 아닌 독일의 작은 공국의 공주로 태어난 그녀는 1744년 15살 때 뾰뜨르 3세와 결혼하고 러시아 군주의 아내로서 삶을 시작했다. 러시아에서 그녀의 위치는 위태롭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어려움을 뚫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으며 계몽사상의 관심을 기우리면서 황실 내에서 자신의 편을 만들어 나갔다. 그리고 1762년 그녀는 성공적인 쿠테타를 지휘함으로서 예까쩨리나 2세로 등극하였다. 러시아의 왕실 출신이 아닌 그녀가 쿠테타를 통해 등극했다는 것은 그녀가 어떤 정통성을 지니지도 못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뾰뜨르 대제의 청동 기마상>을 건설함으로서 자신의 정통성 확보에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즉 <뾰뜨르 대제의 청동 기마상> 은 새로운 러시아 건설과 왕위 계승의 상징성을 지니고 나타나게 된 것이다. 어떠한 부분에서 기마상이 그러한 의미를 지니는지 역사적 의미와 문화적 의미를 알아보도록 하겠다.
샹뜨 -뻬쩨르부르그의 탄생과 뾰뜨르 대제
17세기 말과 18세기 초, 뾰뜨르 1세 즉 뾰뜨르 대제가 개혁한 행정, 사법, 교육, 외교, 군사, 문화 등과 갖은 모든 종류의 국가 업무는 러시아인들의 삶의 전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었으며, 모스끄바 시대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제정 러시아 시대’의 개막이었다. 이덕형, ≪천년의 울림≫,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04. p. 283.
러시아의 역사학자 랴자노프스끼는 ≪러시아의 역사≫에서 역사학자 미하일 빠고진(1800~1857)의 진술을 인용 “빠고진의 말에 의하면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 잠자리에 들 때가지 뻬째부르크에 거주하는 사람들, 즉 빼쩨르부르그의 모든 일상생활은 뾰뜨르 대제의 근본적인 개혁에 의해 모스끄바 공국의 시대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은 삶을 시작한다” 라고 기술 했다. 이와 같이 러시안인들의 생활은 러시아식 습관과 관습이 아니라 새롭게 학습을 통해 익혀진 인위적인 내용으로 가득차고 종교적인 신앙의 교리보다는 현실적인 삶의 기술들이 우위에 서는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뾰뜨르 대제는 이러한 변화의 선봉장이자 개혁가였던 것이다.
참고 자료
1.강태용, ≪동방정교회≫, 도서출판, 정교, 1996.
2.니콜라스 V. 랴자노프스키 지음, 이길주 옮김, ≪러시의 역사 Ⅰ-고대 ~ 1800-≫, 까치 글방, 1997.
3. 이덕형, ≪슬라브연구≫ 11권,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1994.
4. 이덕형, ≪천년의 울림≫,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04.
5. Berelovich, Wladimir, Histoire de Saint-Peterbourg. Paris:Fayard.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