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2006년 11월 1일 작성자료입니다.
인류사회의 발전과정에서 평등사회가 계층사회로 넘어가는 시기는 지역적 환경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대략 신석기 중기 또는 후기이다. 이 시기(우리나라의 경우 BC 2000 ~ BC 800년경)를 전후하여 전세계적인 문화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는 엄청난 노동력이 투입되는 거대한 건축물이나 기념물의 축조이다.
이를 거석문화라 하는데, 이는 인간이 어떤 목적의식(특정한 타계관(他界觀) 또는 풍양관념(豊穰觀念))을 가지고, 자연석 또는 가공한 돌로 구조물을 축조하여 숭배의 대상물이나 무덤으로 이용한 문화를 말한다. 거석이란 하나의 구조물이나 기념물 또는 그 일부로 사용된 돌을 말하며, 거석물은 인간의 행위에 의해 직접적인 대상물 즉, 돌로 만든 구조물을 뜻한다. 거석문화가 돌을 이용한 구조물을 총칭한다고 할 때, 큰 돌을 이용한 지석묘나 선돌 그리고 작은 돌을 이용한 돌널무덤이나 돌무지무덤도 이에 포함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선돌과 지석묘가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특히 전세계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지석묘의 경우 우리나라에 전체 개수(약 5만여 기)의 반 이상(약 2만9천여 기)이 밀집되어 있다.
영국 갤런디시 스톤 유적용인 남사면 창리 선돌
목차
Ⅰ. 머리말 - 거석문화와 지석묘
Ⅱ. 한국 지석묘의 기원과 전파
- 입지와 방향, 형식분류,
세부구조, 축조과정,
기원과 편년, 분포
부장품과 기능, 성혈
Ⅲ. 맺음말 - 지석묘의 연구 방향
본문내용
(형식분류) 지석묘의 형식 분류는 학자에 따라 다르고, 또 지하석실구조에 따라 다시 세분된다. 즉, 석실뚜껑의 유무와 석관, 석실, 토광등 석실의 구조, 그리고 석실의 수 또는 학자들의 분류기준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된다. (#별첨1 참조)
현재 대부분의 학자들이 이용하는 분류기준에 따라 우리나라 지석묘는 크게 세 가지 형식, 즉 북방(北方式), 남방식(南方式), 그리고 개석식(蓋石式)으로 나뉜다.
먼저 북방식 지석묘는 네 개의 판석을 세워서 장방형의 돌방을 구성하고 그 위에 거대하고 편평한 돌을 뚜껑돌로 올려놓은 것으로, 유해가 매장되는 돌방을 지상에 노출시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돌방의 긴 변에 세운 두 개의 받침돌은 거대한 뚜껑돌의 무게를 직접 받치고 있으므로 두꺼운 판석을 사용하고 있으며, 하부는 땅속에 깊이 묻혀 있다. 이러한 외형 때문에 탁자식 지석묘라고도 불린다. 또한 밑뿌리의 형태는 되도록 지하에 깊이 박히도록 삼각형이나 반달형을 이루고 있다. 돌방 내부에는 자갈이나 판석을 까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맨땅인 것이 보통이다. 뚜껑돌의 크기는 대개 2 ~ 4m 정도가 보통이며, 돌방은 하나로 구성된 경우가 많으나, 여러 개인 경우도 존재한다. 이 북방식 지석묘는 주로 한강 이북에 분포하고 있으며, 평안남도와 황해도 지방의 대동강, 재령강 일대에 집중되어 있으나, 평안북도와 함경도에는 지석묘의 분포가 드물다. 종전에는 전라도와 경상도의 북방식 지석묘가 개석식으로 오인되었으나 현재 이러한 북방식 지석묘는 전국에서 발견되고 있다. 부장품은 대개 화살촉과 돌검이 주가 되고, 옥류나 청동검이 나오나, 이 북방식 지석묘에서는 부장품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는데, 이는 돌방이 지상에 노출되어 일찍이 도굴당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참고 자료
1. 최몽룡 외, [韓國 支石墓 硏究 理論과 方法](주류성, 2000).
2. 사회과학원, [조선의 고인돌무덤 연구](중심, 2002).
3. 최택선 외, [조선의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시대](민족문화, 1995).
4.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3(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탐구당, 2003).
5. 하문식, [고조선 지역의 고인돌 연구](백산자료원, 1999).
6. 유태용, [한국 지석묘 연구](주류성, 2003)
이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