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노덕술에 관한 조사
- 최초 등록일
- 2006.10.28
- 최종 저작일
- 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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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지금 우리시대는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 예전 일제강점기 시대 우리나라의 독립을 부르짖으면서 일제에 대항한 독립군의 후손들은 지금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데 반해 일제에 아부하면서 자기 사리사욕을 채워간 매국노들은 지금도 시대에 큰소리를 치면서 정치 사회, 문화 등의 분야에 활동을 하고 경제적으로도 부를 갖추고 살아가고 있다. 생각해보면 일제 강점기에 매국노들을 깨끗이 처단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친일 행적을 한 사람들 중 한 명을 꼽아 조사하였다.
목차
1. 서론
2. 약력
3. 훈7등 종7위 훈장의 극악한 친일 경력
4. 반민특위의 수배 하에서도 활보하던 친일경찰의 거두
5. 되살아난 고문의 악습
6. 노덕술의 체포와 친일경찰의 총궐기
7. 출세와 영달을 향한 불굴의 의지
8.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노덕술은 경북 울산에서 태어나 울산보통학교 2학년을 중퇴하고 일본인 상점에서 고용인으로 일하다가 일본 북해도로 취직차 건너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귀국하여 1920년 6월경 경남 순사교습소를 졸업하고, 경상남도 경찰부 보안과 근무를 시작으로 친일경찰의 이력을 쌓아가기 시작했다.<br />
그 후 그는 울산경찰서 사법계에 근무하면서 순사부장이 되었고 1924년에는 경부보로 승진하여 의령, 김해, 거창, 동래, 통영 등 각 경찰서 사법주임을 지냈으며, 1930년대 초에는 경부로 승진하여 서울 본정, 인천, 개성, 종로 등 각 경찰서 사법주임과 고등계주임 등 요직을 맡았다. 그는 1934년 9월에 평남 보안과장으로 승진, 해방이 될 때까지 일제하에서 27년간 사상 관계 사건을 취급하여 일제로부터 훈7등 종7위(勳7等 從7位)의 훈장을 받았다. 해방이 되기까지 일제 강점기를 통틀어 조선인으로서 경찰부장을 지낸 자는 1844년 황해도 경찰부장이 된 윤중화(尹重華) 한 사람뿐이었으며 해방 직전까지 경시가 된 자는 총 21명뿐이었다. 해방 당시 일제 경찰의 경시를 지낸 인물들 중 알려진 자들로는 최경진(崔慶進), 최연(崔燕), 전봉덕(田鳳德), 이익홍(李益興), 윤우경(尹宇景), 노덕술, 손석도(孫錫度), 노주봉(盧周鳳) 등 8명으로 노덕술은 일제 강점기 조선인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경찰의 고위직인 경시까지 승진한 극소수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것이다. 그가 빈약한 학력으로 경시까지 승진할 수 있었고, 일제로부터 훈장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과연 무엇이었으며 그의 비상한 친일 공로는 어떤 것이었는가? <br />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