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시해사건
- 최초 등록일
- 2006.10.19
- 최종 저작일
- 2004.11
- 4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소개글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관한 작성한 리포트입니다
목차
1. 序論
2. 本論
1) 明成 皇后는 누구인가?
2) 興宣大院君과 明成 皇后의 葛藤은 어디서 기인되었는가?
3) 明成 皇后가 殺害되었을 때 興宣大院君의 행적은?
3. 結論
4. 參考文獻
본문내용
1. 序論
옛 老人들이 며느리를 흉볼 때 가끔 쓰던 욕이 `閔后 같은 년`이었다. 閔后란 閔妃, 곧 明成 皇后를 일컫는다.
지난 100년간 明成 皇后(1851∼1895)는 우리에게 이런 존재였다. 권모술수로 시아버지를 내치고, 奢侈와 放蕩을 일삼았으며, 급기야는 나라까지 말아먹은 `사악한 암탉`. 비록 歷史冊은 그녀를 `外勢에 의해 비참한 最後를 맞은 國母`라고 記錄했으나 일반 韓國人에게 그녀는 잊고 싶고, 부정하고 싶은 `부끄러운 과거`였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구국의 殉敎者`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최근 몇 년간 `明成 皇后 신드롬`을 일으킨 뮤지컬(〈明成 皇后〉)·드라마(〈明成 皇后〉)·다큐멘터리(〈다시 살아오는 國母, 明成 皇后〉)는 일제히 그녀를 `當代 最高 政治家``愛國 魂의 화신`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 덕분일까. 일반 대중은 그녀에게 흠뻑 빠져들었다. 폐가나 다름없던 明成 皇后 生家(京畿道 驪州)는 새 관광 명소로 탈바꿈했다. 國史編纂委員會에 따르면, 歷史的인 人物 가운데 그녀만큼 단기간에 폭발적인 관심을 끈 人物은 일찍이 없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皇后의 眞面目일까. 明成 皇后 시해 106주기(10월8일)를 맞은 이즈음, 皇后를 客觀的으로 再評價하려는 시도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그녀의 죽음과 관련된 새로운 사실도 하나 둘 밝혀지고 있다. 여기에 의거해 皇后에 얽힌 眞實을 살펴보자.
2. 本論
1) 明成 皇后는 누구인가?
明成 皇后의 본관은 驪興, 성은 閔氏로, 1851년(철종 2) 京畿道 驪州에서 出生 하였다. 贈 領議政 致祿의 딸이다. 9세 때 고아가 되어 本家에서 가난하게 자라다가, 興宣大院君의 婦人 府大夫人 민씨의 추천으로 王妃에 揀擇․冊封되었다. 그러나 궁인 이씨에게서 完和君이 出生하자 이를 기뻐하는 興宣大院君과 對立, 興宣大院君의 反對派를 규합하는 한편, 민씨 척족을 정부 요직에 앉히고 勢力 기반을 착실히 다져 나갔다.
1873년 日本에서 征韓論이 대두되면서 내외정세가 긴박해지고, 景福宮 重建으로 民生苦가 가중되는 등 興宣大院君의 失政이 계속되자, 그를 彈劾하기 위해 儒林의 거두 崔益鉉을 同副承旨로 발탁하였다. 이어 興宣大院君派의 反對 상소와 주장을 배척하고, 고종에게 親政을 宣布하게 함으로써 정권의 기반을 확고하게 다진 뒤, 大院君派를 숙청하고 鎖國政策을 폐하여 日本과 수교하였다.
참고 자료
《明成 皇后 弑害事件》 민음사, 1992, 최문형
《明成 皇后 弑害의 眞實을 밝힌다 : 선전포고 없는 日本의 대러 개전》 지식산업사, 2003, 최문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