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불교계의 변동에 관한 글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신라 불교의 전개와 발전
(1) 불교의 전래
(2) 불교 사상의 발전
3. 신라 하대 불교계의 변화
(1) 신라 하대 사회의 변동
(2) 불교계의 변화 -선종의 등장과 교종의 쇠퇴-
(3) 선종 구산의 성립
4. 미술상의 변화 -석탑과 석불을 중심으로-
(1) 석탑의 변화
(2) 석불의 변화
5. 나오며
본문내용
1. 들어가며
삼국통일 이후 신라의 불교는 중대(中代 : 654~780)의 화엄종과 하대(下代 : 780~935)의 선종으로 구분하여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통일 직후인 중대에는 통일전쟁시기에 의상(義湘 : 625~702)에 의해 수용된 화엄종이 왕실의 후원을 받아 불교계의 주류로 자리 잡게 되었고, 하대에는 9세기 이후 새롭게 수용된 선종이 진골귀족을 대신하여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성장하던 육두품 및 지방 호족들과 연결되어 교학불교를 제치고 불교계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였던 것이다. 崔船植, 「8세기 신라 불교의 동향과 동아시아 불교계」, 2005, p.1
이와 같이 신라의 불교의 변화는 당시의 시대상과 일치하는 면이 많이 있다. 따라서 당시의 모습을 알고 이해하는데 불교의 변화를 알아보는 것은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여기서는 신라 불교의 전개와 발전과 하대에 이르러서 변화하는 모습을 다루면서, 선종이 어떤 이유로 부각하게 되었으며, 이것이 그 시기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2. 신라 불교의 전개와 발전
(1) 불교의 전래
신라에 불교가 처음 들어온 것은 눌지왕(417~458) 때였으나, 본격적으로 발전한 것은 법흥왕이 그가 아끼던 신하인 이차돈을 참수시킨 후라 할 수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신라의 조정은 불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곧 이차돈의 순교는 불교가 국가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것으로 서라벌 백성들이 생각하게 된 사건이 된 것이다.
법흥왕의 뒤를 이어 진흥왕이 왕위에 오른 시기부터 불교가 국가와 떠나지 아니하고, 애국하는 불교로 전환되었다. 진흥왕 자신도 법흥왕 못지않게 불심이 강했다는 사실은 이제 신라가 본격적인 불교국가로 거듭나는 계기가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이로 인해 불교를 신라의 국교로 삼게 되었다는 사실과 신라인들이 이제 전반적으로 불교적 사고방식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진흥왕 때에는 불교가 국가사회와 밀접한 관계임을 밝히고. 그 전의 순수한 불교와는 달리 국가 전반이 불교정신으로 돌아가 불교생활과 호국운동을 같이하는 단체생활이 이루어지게 된다.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된 화랑도가 불교정신에 의해 중심적으로 형성, 발전되었다는 것은 이를 뒷받침하는 사실이라 할 수 있다.
참고 자료
1. 사료
1. 삼국유사
2. 삼국사기
2. 단행본
1. 이기백, 『한국사신론』, 일조각, 2005
2. 송석상, 이강승, 『우리의 문화유산』, 학연문화사, 2003
3. 김복순, 『한국 고대 불교사 연구』, 민족사, 2002
4. 곽승훈, 『통일신라시대의 정치변동과 불교』, 국학자료원, 2002
5. 정영호, 『석탑』, 대원사, 1999
6. 진홍섭, 『석불』, 대원사, 1997
7. 강만길 외, 『한국사 4 -고대사회에서 중세사회로-』, 한길사, 1995
8.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9 -통일신라-』,국사편찬위원회, 1998
9. 김상현, 『신라의 사상과 문화』, 일지사, 1999
10. 한기두, 『한국불교사상연구』, 일지사, 1992
3. 논문
1. 최선식, 「8세기 신라 불교의 동향과 동아시아 불교계」, 『역사에서의 종교 와 신앙』, 국제역사학한국위원회, 2005
2. 조경시, 「신라 하대 화엄종의 구조와 경향」,『부대사학』13,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