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광복 이후 1980년대 까지의 국어학 연구사
- 최초 등록일
- 2006.10.07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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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광복이후 1980년대 까지의 국어학연구사 요약입니다.
목차
Ⅰ. 광복 후의 국어 연구 (1945~1950)
1. 조국의 광복과 국어학
2. 국어 정책
3. 국어사와 국어학사의 연구
Ⅱ.사변 후의 국어 연구(1950~1959)
1. 1950년대의 국어학
2. 국어 연구를 위한 여건 변화 학계 창립, 재건
3. 국어 정책의 실패
4. 국어사 연구
5. 현대국어 연구
6. 국어학사의 연구
Ⅲ. 1960년대의 국어 연구
1. 구조주의 이론의 도입과 적용
2. 국어사 연구의 결실
3. 변형 생성 문법의 도입
Ⅳ. 1970년대의 국어연구
1. 학회 활동의 변화
2. 구조주의 이론의 결실과 생성 문법의 적용
3. 국어사 연구
4. 국어학 연구 평가
Ⅴ. 1980년대의 국어연구
1. 국어학 연구의 자리잡음
2. 국어의 역사적 연구
3. 국어학 연구의 정리
*참고 문헌
본문내용
Ⅰ. 광복 후의 국어 연구 (1945~1950)
1. 조국의 광복과 국어학
(가) 식민지 시대의 국어학은 규범성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이론과학으로서의 모습을 갖추지 못한 것이 많다. 규범 과학으로서의 국어학이 이론과학으로 탈바꿈을 한 것은 8․15 광복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나) 국어 회복을 위한 노력의 일단으로 국어 순화와 관련된 활동이 이루어 졌으며, 국어사와 국어학사에 대한 연구는 저항기부터 관심을 보여 온 영역으로써 더욱 활발한 연구가 시작된다. 이시기는 이념적 민족운동이 활발하던 시기로 국어학의 분야에서도 민족운동의 일환으로 계속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태도를 여전히 가지고 있었고, 종전 민족운동을 완성시키려는 뜻에서 더욱 강조된 경향이 있다.
(다) 대학에 국어국문학과가 개설되어 우리들 손으로 국어학을 가르치면서 보다 조직적으로 국어학을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다.
(라) 관련 용어들도 ‘조선어’는 ‘국어’로, ‘조선어학’은 ‘국어학’으로 바뀌게 된다.
(마) 학의 이론적 기반 구축에 대한 이해가 깊어짐으로써 식민지 시대에 큰 굽이를 이루었던 실천적 국어학과의 관계가 선명해졌으며, 국어학의 이해 체계가 어느 정도 정립되었다. 8․15 광복은 식민지 시대의 국어학 연구가 우리의 손으로 통합되었다는 역사적 의의를 가진 것이었다.
2. 국어 정책
(가) 신속한 국어 회복이 당면한 현안 과제로써, 바른 언어 보급보다 문자 보급이 긴급하였다. 이에 ‘조선어학회’(1949년 한글학회로 이름 변경)에서는 국어교과서 편찬, 국어 교원 양성, 한글지 속간, 국어사전 편찬 완결과 같은 당면 방침을 정한다.
(나) 정부에서도 한자폐지와 풀어쓰기 등의 국어 정책을 내놓게 되지만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실효를 거두지는 못한다.
(다) 맞춤법과 외래어 표기법도 개정 되었는데, 이것도 크게 실효를 거두지는 못한다.
3. 국어사와 국어학사의 연구
(가) 대학이 건설됨으로써 국어 연구가 학회 중심에서 대학 중심으로 전개 되었다. 이시기에는 논문을 발표할 학보가 크게 제한되어있었고, 업적 면에서도 질적 양적 모두 저조 하였다.
참고 자료
고영근(1985), 국어학연구사, 학연사.
김민수(1980), 신국어학사(전정판), 일조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