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조선 후기 봉건제의 위기와 자본주의의 양상
- 최초 등록일
- 2006.09.21
- 최종 저작일
- 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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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 후기 봉건제의 위기와 자본주의의 양상-
수공업과 광업을 통해 살펴 본 조선 후기 경제 전반에 대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참고하세요. ^^
목차
Ⅰ. 머리말
Ⅱ. 조선후기 공업과 광업 연구의 추이
1. 수공업의 발전
1) 관청수공업의 변화
① 장인등록제의 붕괴
② 관청수공업의 변질
③ 관청수공업 변화의 의미
2) 민간수공업의 발전
① 도시 장인의 상품생산
② 농촌 수공업의 발전
③ 조선후기 민간수공업은 어디까지인가.
2. 광업의 발달
1) 군수광업의 발달
2) 설점수세제(設店收稅制)의 성립
3) 광업의 민영화 과정
Ⅲ. 조선후기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인가
Ⅳ. 맺음말
본문내용
관청수공업은 조선 왕조의 성립과 함께 강화, 확립되어 왕조 초기 15세기에 가장 완비된 형태를 갖추었다. 그러나 16세기 사회 혼란기에 그 기틀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그 원인은 정부의 재정 악화를 일차적으로 들 수 있다. 왕조 초기에 과전법의 강행과 사찰 재산의 몰수 등 일련의 과감한 정책수행으로 일시 안정되었던 재정사정은 연산군 시대를 고비로 악화되어 초기 행해지던 관청수공업 형태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른다. 이러한 재정 악화에 따라 당시 체아직이었던 관청수공업장에 동원된 공장들은 월급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사정이었다. 또한 관청수공업 체제가 관노 중심의 체제에서 양인 중심의 체제로 옮겨 간 후 양인 공장에 대한 대우가 불충분하였으므로 이들의 이탈이 보다 쉽게 이루어졌고 정부는 인력을 메우기 위해 관노들로 대신 충당하였던 것이다. 다음의 기록은 위와 같은 상황을 잘 드러내준다.
`지금에는 장인들이 모두 유명무실하다. 공조 · 선공감 등의 관영수공업장에도 공장이 없어서 작업을 할 때는 모두 사장인(私匠人)들을 부리는데 그 기술이 우수하지 못하다. 공장들이 없어진 것은 요미(料米)가 적어져서 그들이 관장수공업장에서 작업하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중종실록, 권60, 중종 23년, 1월 계미)
또한 관청수공업에서 공장들이 이탈한 것은 양인과 노비들의 피역저항 때문이기도 하다. 아래에서 이야기 할 장인 등록제 등은 지배질서를 강화하고 국민을 강력히 통제하는 조선 왕조 정책의 일환이다.
참고 자료
교과서 강만길,「고쳐 쓴 한국근대사」, 창작과 비평사, 1994
한국역사연구회지음,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1, 청년사,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