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자유의 또 다른 해석
- 최초 등록일
- 2006.09.17
- 최종 저작일
- 2006.09
- 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봉건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변화되는 과정에서 농민들이 쟁취한 자유를 과연 그들이 그것을 얻기 위해서 노력을 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그들이 그 자유를 쟁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증명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봉건사회에서의 고정된 영주와 농노의 관계가 바뀌지 않는 한, 농민의 처지는 실제로 나아질 수 없었다. 그러나 상업이 성장하고 화폐 경제가 도입되고 도시가 번영한 덕분에 농민은 속박을 부술 수 있게 되었다.
그 중요한 요인은 시장이 확대됨에 따라 농업의 생산력이 더 나은 경작 방법으로 옛 토지에서 더 많이 수확하는 집약적 발전과, 경작되지 않은 새로운 지역을 개발하는 조방적 발전을 통하여 많이 증가했다.
농민들은 투쟁을 통하여 자유를 얻을 수 있었고 성가신 부역을 면제받으면서 한 뙈기의 토지나 아니면 적어도 그 일부를 소유할 수 있었다. 이렇게 성장하는 개척운동 덕분에 사용하지 않던 수많은 토지가 경작지로 변했다. 그래서 1350년까지 슐레지엔에는 15만 명에서 20만 명의 개척자들이 경작하는 1500개의 정착지가 새로 생겨났다. 이런 조방적인 발전과 더불어 농노들이 이제는 자유로운 토지, 즉 마땅찮은 부역이 아니라 화폐 지대를 부담하는 토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중요했다.
시장이 성장함으로 인해 농민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과 영주가 가져가는 부분을 제외한 곡물은 모두 팔고 그 대가로 농민은 화폐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현명한 영주들은 농노를 자유롭게 해줬지만 교회를 비롯한 어리석은 영주들은 기존의 것이 이제부터는 더 이상 계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 있게 마련이다. 어떤 사람들은 피할 수 없는 변화에 직면해 기존의 것을 전보다 더 굳게 붙들고 늘어진다. 그래서 그들은 농노들에게 자유를 주려 하지 않았다.
인간은 구속이 될 수 있는 유한한 존재이다. 그래서 비록 구속되지 않은 상태라 하더라도, 모든 장애, 또는 금기에서 해방됨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자유는 그러한 장애나 금기를 초월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역사적·사회적으로 변화한다.
농민들은 봉건사회 안에 구속되어 있었고, 그들은 그 안에서 자유를 갈망하였고 그럼으로 인해 그들은 투쟁을 통해 그 구속된 사회 안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분을 조금은 엉뚱하지만, 조금의 상상력을 발휘해서 생각해보고 싶다.
그 농민들은 사회의 계급분화가 뚜렷한 [봉건] 체제에서 태어나 그 사회에서 자기가 많은 임무를 잘 수행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배웠고 또 그것을 의심하지 않고 믿었다. 그리고 자기 신분을 넘어서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농민들은 생존하는 데 필요한 것보다 많은 일을 하려는 동기도 적었다. 농민은 관습에 따라서 틀에 박힌 일을 되풀이하는 그러한 불행한 운명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나는 이 부분에서 한 가지 의구심이 가던 것이 있었다. 봉건주의 사회에 완전히 젖어 들어서 자신의 생존을 위한 생각밖에는 할 수가 없었던 그들이 진정으로 자유를 갈망하여 미개간지를 개척하고 시장을 성장시켰을까 하는 것이다.
참고 자료
리오 휴버먼, 2000, ‘농민이 속박을 부수다’,『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책벌레, p.62-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