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상]식민지조선에 있어서 동방(東方)이라는 경계와 내셔널(national)한 지(知)의 형성
- 최초 등록일
- 2006.09.15
- 최종 저작일
- 20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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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시작하는 말
2. 단군이라는 주제
(1) [일선동조론]과 [단군]이라는 주제
(2) 최남선에게 있어서 단군, 기자라는 주제와 종교적 고고학
3. [불함문화론]이라는 텍스트
4. [고유신앙]이라는 언설과 일본 신도와의 상동적인 지식
5. 마치며
본문내용
1. 시작하는 말
식민지기 최대의 지식인의 한명으로써 조선의 칸트, 또는 조선의 우에스기 신키치라 불렸던 최남선(육당, 1890~1954)은 해방 이후인 1949년 2월에 반민족행위자가 되어 서울 마포형무소에 1개월간 수감되었다. 그 당시, 그의 친일적 행위를 나타내는 것의 하나에 불함문화론(1925년 탈고, 27년 간행, 일본어판)이라고 하는 저술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것이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에 동조하는 텍스트였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런 평가는 작금의 연구자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수감 당시, 최남선이 일본과 조선의 정신상의 장기전에 대비로서 국조(國祖)신앙(단군)을 우리들의 정신적 지주로 확립하려 함으로써 우리들의 민심을 표명하려 한 것은 어떤 면에서는 이 [불함문화론]에 대한 그의 강한 애착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1927년 발행된 [조선 및 조선민족 제1집](조선사상통신사)에 게재된 이 논문을 발쇄하여 서명과 함께 교토제국대학 도서관등에 기증했던 사실 등에서 그의 그러한 일관성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최남선이 일선동조론의 텍스트로써의 [불함문화론]의 저술전후에, 친일파로 전향했다는 종래의 평가와는 달리 [불함문화론]의 기본구상자체는 1922년에 출판된 [조선역사통속강화개제]에 이미 보이고 있다. 이 책에서는 동경제국대학의 세키노 타다시의 [한국건축조사보고](1902년)에서 시작된 일본인에 의한 고적조사사업에서 받은 충격에 대한 대응으로 이것을 대신하기 위해 조선인 자신들의 손으로 조선학을 구축할 것을 말하고 있다. 즉, 시라토리 쿠라키치와 나이토 코난 등이 주도한 동양학(만선사)과 그 일환으로의 조선연구에 대한 대항을 목적으로 한 조선학을 주창하고 있는 것이다.
최남선에게 있어서 동양학의 입장은 불함문화계통의 중심으로써 조선의 고전설(古伝說)이라 하는 언어의 증적(証迹)을 더듬어 가는 과정에 의해서 이 문화권을 중심으로 하는 진정한 의미의 어떤 종류의 문화사를 수립하려 한 희망이 파악된다. [조선을 통해 본 동방문화의 연원과 단군을 계기로 한 인류문화의 일부의 모습]이란 부제가 달린 [불함문화론]도, 이러한 불함문화권의 개념에 의한 최남선의 조선학 내지 동양학의 구상이 1920년대 중반 이후의 단군이라는 주제의 본격적인 부상과 함께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형태로 나타난 텍스트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이 단군이라는 존재는 후술하겠지만 [일선동조론]이 식민지 조선사회에 있어서 더 이상 기능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하는 위기감을 조선총독부에 가져온 중심주제였고, 이러한 의미에서 [불함문화론]을 오로지 [일선동조론]의 텍스트로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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