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호족연합정권설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06.09.12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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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시대 호족연합정권설과 그 반론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호족의 기원과 성격
Ⅱ.호족연합정권설
ⅰ.호족의 독자성
ⅱ.호족과 왕권과의 관계
ⅲ.혼인정책
ⅳ.여러가지 제도상의 특징
Ⅲ.호족연합정권설의 반론
Ⅳ.결론
본문내용
Ⅰ.호족의 기원과 성격
신라 말 고려 초에 새로이 등장하는 豪族은 그들의 성립과정과 호족을 구성하는 사회계층, 또는 존재형태나 변천과정 등에 있어서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다. 호족의 개념은 먼저 혈연집단을 기초로 한 촌락의 수장으로 파악되고 있다. 혈연집단이란 다름아닌 族團의 모습으로, 호족은 이렇게 지방의 유력한 족단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은 후대의 姓氏집단과 같은 의미였다. 그러므로 호족은 족단을 기초로 한 혈족집단의 수장으로서, 혈연집단은 신라시대부터 촌락을 구성하는 사회적 기초였고 나말려초기를 거쳐 고려 후기에 이르러 족단 내부의 계층분화가 진행되기까지 정치․사회적 기초단위 집단을 구성하고 있었다. 나말려초의 호족은 성주․장군이라 자칭하면서 지방사회를 통치하였고 중앙의 정치기구를 모방한 독자적인 지배기구 즉 관반제를 갖추고 있었다. 또한 이들은 경제력은 물론 권력과 무력을 갖추고 문화를 독점적으로 향유하였으며 사상적으로는 당시 새로이 전래된 선종불교를 받아 들여 이를 후원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일정한 지역에서 대두한 호족 중 세력이 가장 큰 호족은 그 수장을 통하여 하위의 호족을 지배하였다. 보통 호족의 기원은 크게 신라 村主계층이 성장한 것이나 중앙귀족이 낙향 또는 몰락하여 지방세력화한 것 등으로 보아 왔다. 그러나 촌주 출신 중에서 호족으로 성장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으나 이에 부정적인 견해도 있다. 이러한 지방 호족세력은 그 유형을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金周元의 후예인 溟洲의 金順式처럼 지방 호족을 토대로 하여 신라정부에 반대적 입장을 취하는 부류, 淸海鎭의 張保皐, 康州의 王逢規 등과 같이 해상세력으로서의 호족, 견훤과 같이 草賊․群盜의 무리가 도당화된 부류 등이 그것이다. 나말려초의 호족들은 후삼국시기를 거쳐 국가체제에 편입되기 시작하였고 궁예나 견훤, 왕건 중에서 결국 개인적인 능력이 뛰어난 왕건에 의해 통합되어 갔다. 고려왕조 성립 후 호족들은 두 가지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하나는 중앙으로 진출하여 문벌귀족화하게 되는 부류이고, 다른 하나는 지방에 남아 있으면서 왕권강화와 더불어 향리화의 길을 걷게 되는 부류이다.
참고 자료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12』「호족연합정권설의 문제」, 1993
◎ 하현강, 한국중세사연구, 일조각, 1988
◎ 장덕호, 「나말여초 호족세력의 존재형태에 대한 연구」, 명지대 대학원, 1997, 41~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