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단군신화
- 최초 등록일
- 2006.08.27
- 최종 저작일
- 20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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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序論
本論
1.신화학으로 바라보는 단군의 의미
2.정치학으로 보는 단군신화
3.사회학적으로 보는 단군신화
(1)단군의 매몰
(2)단군을 사회학으로 바라보는 민족주의적 의미
(3)일제의 식민교육정책과 단군
結論
參考文獻
본문내용
1.신화학으로 바라보는 단군의 의미
단군신화에 원형에 가장 접근한다는 「삼국유사」중 한 부분이다.
“옛날 환인의 서자(庶子:장남이 아닌 차남 이하의 아들을 말함.) 환웅이 자주 세상에 내려가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하므로 아버지가 환웅의 뜻을 헤아려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어 세상에 내려가 사람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3,000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伯山) 꼭대기의 신단수(神壇樹)밑에 내려와 그곳을 신시(神市)라 이르니 그가 곧 환웅천왕이다. 그는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 명(命)· 병(病)· 형(刑)· 선(善)· 악(惡) 등 무릇 인간 360여가지 일을 맡아서 세상을 다스렸다.
이때 곰 한마리와 범 한마리가 있어 같은 굴속에 살면서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환웅은 이들에게 신령스러운 쑥 한줌과 마늘 20쪽을 주면서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된다고 일렀다. 곰과 범이 이것을 받아서 먹고 근신하기 3·7일(21일)만에 곰은 여자의 몸이 되고 범은 이것을 못 참아서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웅녀(熊女)는 그와 혼인해주는 이가 없으므로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가지게 해달라고 기원하였다. 이에 환웅이 잠시 변해 혼인하여 아이를 낳으니 그가 곧 단군왕검(壇君王儉)이다.
왕검이 당고(唐高:중국의 성군인 三皇五帝 가운데 堯임금을 말함. 당시 고려의 3대 왕인 定宗의 이름이 堯인 까닭에 이를 피하여 비슷한 의미인 高자로 대신 쓴 것임.) 즉위 후 50년인 경인(庚寅:당고의 즉위년은 戊辰인즉 50년은 丁巳요 경인이 아니니 틀린듯함.)에 평양성(平壤城)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일컬었다. 이어서 도읍을 백악산(白岳山)의 아사달로 옮겼는데 그곳을 궁홀산(弓忽山:弓 대신 方자로도 씀.)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고도 하였다.
단군은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고 주(周)나라 호왕(虎王:주나라의 武王을 말함. 고려 2대왕 惠宗의 이름 武를 피한 것임.)이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箕子)를 조선의 임금으로 봉하니 단군은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서 산신이 되니 나이가 1,908세였다.” .....................
이것은 「제왕운기」에 실려져 있는 기록이다.
《제왕운기》에서는 《본기 本紀》(본기는 ‘단군본기’인 듯함.)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상제(上帝)인 환인에게 서자인 웅(雄)이 있었다. ……(아버지가)일러 말하기를 내려가 삼위태백(三危太白)에 이르러 널리 사람에게 도움을 주라 하여 웅이 천부인(天符印) 3개를 받아 귀신〔鬼〕 3,000을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 내려오니 이가 바로 단웅천왕이다. ……손녀로 하여금 약을 마셔 사람이 되게 하고 단수신(檀樹神)과 혼인하여 단군(檀君)을 낳았다.
참고 자료
노태돈(2000), 단군과 고조선사, 서울: 사계절
송영현(1999), 단군과 고조선, 서울: 살림터
조근태(2002), 삼국유사 , 서울:현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