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안정복의 동사강목
- 최초 등록일
- 2006.07.14
- 최종 저작일
- 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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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신시대 사학자 안정복의 동사강목에 대한 조사.
목차
1. 생애와 저술
2. 학문관과 역사관
3. 동사강목의 편찬
(1) 편찬 과정
(2) 체재
(3) 사실고증과 지리고증
(4) 사론
4. 사학사적 의의
본문내용
1. 생애와 저술
안정복과 그의 대표적 저술인 동사강목은 일찍부터 학계에서 대체로 실학(實學)의 근대성이라는 개념틀에 의해 포괄되어 주목받아왔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 안정복과 그의 역사인식을 당대의 사회상 속에서 학문관, 사회사상, 당파 등의 요소를 고려하여 이해하려는 연구가 늘어가고 있다.
생애
숙종 38년(1712)에 제천에서 안극의 아들로 탄생. ~ 정조 15년(1791) 별세.
현·숙종조 간의 치열했던 당쟁기에 정권에서 밀려난 남인 가정에서 탄생, 성장, 당쟁의 소강기라고 할 수 있는 영종 대의 탕평정치 하에서 학문과 저술에 몰두.
학문적·사상적으로 근기 남인(近畿南人)의 맥을 잇고, 사회적으로 향촌의 사족(士族)가문 출신.
영조 대에 조부 안서우가 노론의 배척으로 울산부사에서 파직되어 전라도 무주에 은거하다가 25세에 가문의 종통을 이어야 하는 부친 안극을 따라 고향인 경기 광주로 이사. 이러한 변화는 안정복이 학문적으로 정통론을 중시하게 된 개인적 배경을 이룸.
성리학으로의 침잠
안정복은 초기엔 유가적 관점을 넘어 박학다식함을 추구. 그의 위학기(爲學期)라고 할 수 있는 광주 시절엔 성리대전(性理大典)을 접하면서부터 성리학에 침잠. 그동안의 학문적 모색에 한계를 느끼고 이를 성리학을 통해 극복하고자 했던 것이라고 이익에게 보낸 편지에서 밝히고 있음. 이무렵 치통도(治統圖)와 도통도(道統圖)를 만들어 고대 이래의 제왕의 계통과 역대 성현의 계통을 각각 정통(正統), 변통(變統), 무통(無統)을 중심으로 분류. 그리고 29세 때에는 하학지남을 저술할 만큼 성장.
실학적 학문의 기점
35세가 되어 안정복은 안산에 살던 이익을 스승으로 삼고 윤동규, 이병휴등과 교유. 40대 부터는 실학적 저술에 몰두하여 임관정요, 동사강목, 열조통기(列朝通紀)등의 왕성한 실학적 저술활동. 이익은 근기 남인 실학파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였는데, 그의 제자대에 이르면 경학(經學)과 역사학에 치중하는 우파와 서학에 경도되는 좌파로 나누어진다. 안정복은 이미 그의 성리학적 학풍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파로 분류.
참고 자료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 상』 , 조동걸·한영우·박찬승 , 창작과비평사
『국역 동사강목』 , 안정복 , 민족문화추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