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수, 당시기 고구려원정
- 최초 등록일
- 2006.07.01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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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수,당시기의 고구려 원정에 대해 조사하였습니다.
목차
Ⅰ. 들어가며
Ⅱ. 수나라와 고구려
1. 문제(文帝)시기의 고구려원정
2.. 양제(煬帝)의 통치와 고구려 원정
3. 고구려원정의 영향
Ⅲ. 당나라와 고구려
1. 당나라와 고구려의 정세
2. 당나라의 고구려원정
3. 고구려원정의 영향
Ⅳ. 나오며
본문내용
Ⅰ. 들어가며
중국 역사에서 대분열시대였던 남북조시대는 북조에서 수나라가 흥기하여 남조 최후의 나라인 진(陳)을 병합시키면서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그리하여 중국은 재차 통일의 시대인 수나라와 당나라가 성립된다. 이 두 나라는 한반도의 삼국에 정치․문화적인 면에서 큰 영향을 끼쳤는데 특히 고구려는 국경이 바로 접해있어 그러한 경향이 더 강하였다.
그럼 이제부터 수․당이 고구려에 어떤 정책을 썼으며 어떤 관계를 유지하였는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Ⅱ. 수나라와 고구려
중국에 통일 정권이 탄생한 것은 주변 여러 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의 큰 위협의 도래였다. 이제까지와 같은 남북양조를 상대로 하는 외교는 이미 의미를 상실하였기 때문에 특히 남조와의 결속 쪽을 강화하여 왔던 여러 나라들(한반도 삼국)은 이 새로운 사태를 눈앞에 두고서 조급한 외교방침의 재조직에 강요되었다.
한편 통일의 위업을 완수한 수 왕조의 입장에서 본다면 주변의 여러 나라는 오랫동안 중국에 일원적인 지배체제가 상실되었던 사이, 각기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 ‘이적(夷狄)’의 여러 세력은 수 왕조 측에 있어서도 마음에 걸리는 존재로 되었다. 특히 몽고 고원의 돌궐과 요동의 고구려는 국경을 인접하고 있는 만큼 수에게는 오히려 위협조차 있었다. 더구나 양자가 통모하여 수에 맞서는 일도 없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수는 북방 변경지역 최강의 세력인 돌궐(突厥)에 대하여 이간정책(離間政策)으로 그들 종족 상호간의 분열을 조장하여 이 제국을 동서로 분열시켰다. 그리고 동돌궐의 사발략한(沙鉢略汗)을 ‘대수(大隋)의 사위’ 라고 하는 ‘가인(家人)의 예(禮)’로 회유하여 이윽고 ‘군신(君臣)의 예(禮)’ 로써 강국을 종속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수의 현안의 하나였던 돌궐 문제는 이렇게 하여 진을 병합하였을 때에 결말이 났다. 남은 것은 고구려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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宮崎市定, 임중혁 외, 『중국중세사』, 신서원, 1996
松九道雄, 김종수 외, 『중국사 개설』, 한울아카데미,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