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중세사]유럽 봉건사회의 성립과정
- 최초 등록일
- 2006.06.28
- 최종 저작일
- 20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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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세 유럽에서 봉건제라는 것이 성립되는 과정입니다. 봉건제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이 아닌 로마가 망하고 게르만 왕국이 건설되면서 왜 봉건제라는 형태가 나타났는가에 대한 것이니 잘 읽어보시고 구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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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게르만 민족의 이동과 게르만 왕국의 형성
Ⅲ. 프랑크 왕국의 형성과 붕괴
Ⅳ. 봉건제의 개념과 해석
Ⅴ.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머리말
‘봉건제’라는 정치체제는 서양의, 특히 유럽의 중세시기를 대변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시기를 대표하는 용어이다. 흔히 봉건제라는 체제가 이용되던 시기를 중세의 시기로 구분 지을 수 있을 만큼 봉건제에 대한 연구는 서양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중세 봉건제는 극도로 혼란한 시대의 와중에 발생하였다. 어느 면에서는 이 같은 혼란 자체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수세기 전, 게르만족의 침입 속에서 형성되었던 서유럽의 새로운 문명은 고대 로마의 문화와 새로운 게르만의 문화가 융합되어 나타나게 되었다. 이에 본문에서는 게르만족의 이동과 동시에 이루어지게 되는 봉건사회의 형성과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Ⅱ. 게르만족의 이동과 게르만 왕국의 형성
서양 중세 세계의 기본적인 형성요소는 로마제국의 문명과 기독교 문화 그리고 이민족의 문화였다. 특히 켈트족과 게르만족을 포함한 이민족의 문화는 중세문명의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그들의 관습법은 로마제국 말기의 혼란과는 대조적으로 로마제국 이후 사회 안정과 결속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로마 사회와 이민족 사회 사이에 명확한 경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기원전 1세기 이래로 로마인과 게르만족은 상호 영향 속에 융합되고 있었으며, 갈리아(Gaul)와 브리튼(Britain)이 로마 속주로 편입될 때부터 켈트족 문명과도 융합되었다. 로마제국은 일찍부터 게르만인을 노예나 콜로누스(Colonus)로 이용하거나 군대에서 용병으로 기용했다. 게르만 용병들은 개별적으로 로마 군대에 입대하거나 동맹군(foederati)이라는 이름으로 부대를 이루어 게르만족 지휘관 휘하의 로마군에 편입되어 로마를 위해 싸웠다. 그 대가로 그들은 변경지역의 토지를 부여 받았다. 이처럼 로마는 실질적으로 제국 변경에까지 그 문명을 확산시켰던 것이다.
로마 사료에서 게르만족의 부족장은 왕으로 지칭되지만 그것이 독립적 주권을 지닌 국가의 왕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었다. 게르만족의 초기 정치제도가 원시적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게르만족의 지도자는 족장 정도의 지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 자료
『봉건사회』, 마르크 블로크, 한길사, 2001.
『유럽의 봉건제도』,최재현, 역사비평사, 1993.
『서양중세사』, 심재윤, 선인, 2005.
『고대에서 봉건제로의 이행』, 페리 앤더슨, 창작과 비평사.
『서양중세사-유럽의 형성과 발전』, 브라이언 타이어니/시드니 페인터, 집문당, 1997.
『서양중세사 강의』, 서양중세사학회, 느티나무, 2003.
「봉건사회의 형성에 관한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