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이탈리아 산타마리아 교회와 최후의 만찬
- 최초 등록일
- 2006.06.18
- 최종 저작일
- 199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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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 이탈리아 산타마리아 교회와 그 내부 도미니카 수도원에 보관되어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 대한 자세한 소개와 훼손으로 인한 보존방향 등 상세내용을 담은 레포트 입니다.
최근 다빈치 코드와 관련해서 최후의 만찬에 숨은 미스테리나 제작과정상의 비밀 등을 상세히 담았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참고하셔도 좋을 듯 하네요.
많은 사진자료도 첨부되어 있고 등장인물 사진 상세소개도 있습니다.
자료 보시고 많은 도움 되셨으면 합니다.
목차
1. 주제선정이유
2.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사유
(1) 선정기준(Criteria)
(2) 유네스코 개관
3.산타마리아 교회와 최후의 만찬
(1) 산타마리아 교회가 위치한 밀라노
1) 밀라노의 문화
2) 밀라노의 예술
(2) 산타마리아 교회
1) 설립배경
2) 특징
(3) 최후의 만찬
1) 레오나르도 다빈치
2) 최후의 만찬 작품설명
4. 훼손 및 복원과정
5. 보존방향
본문내용
〈최후의 만찬〉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밀라노에서 1495~97년간 그린 최대의 걸작이다. 오늘날 보존된 〈최후의 만찬〉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원작과는 많이 달라졌다. 이 불후의 명작은 이미 1497년에 완성한 후 얼마 안 되어 습기 찬 벽 때문에 썩기 시작했다. 이 걸작을 보수 작업한다는 핑계로 이런저런 많은 유명무명의 화가들이 제멋대로 개작해버림으로 말미암아 원작은 망쳐지고 원래의 흔적만 남아있다.
1556년 6월 바자리는 『화가들의 생애』(플로렌스,1550년)라는 책에서 그림이 아주 상해서 희미한 매체 이외에는 아무 것도 볼 수 없다고 전하고 있다. 1722년에 조나단 리차드슨이 쓴 글에서 그리스도의 오른손 쪽에 있는 사도들의 얼굴이 안보이고, 그리스도의 왼쪽에 있는 사도들도 한 사람만 원색을 보전할 뿐, 다른 사도들은 퇴색해 있었다고 기록했다. 1770년에 그림은 더욱 악화되어 수도원은 귀세페 마짜에게 복원작업을 시켰다. 그는 〈최후의 만찬〉의 한 쪽을 페인트로 다 지우고 그 위에다 자기가 다시 그렸지만, 결과는 그림을 완전히 망쳐버릴 뿐이었다. 괴테가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독일로 돌아가면서 본 〈최후의 만찬〉은 마짜가 복원한 상태의 것이었다.
이 그림이 겪은 수난의 미술사는 계속되었다. 1796년〈최후의 만찬〉이 그려진 수도원의 공동식당은 이탈리아를 점령한 프랑스 군대의 마구간으로 한동안 사용되었다. 1943년 이차대전 동안에 공중 폭격 중 날아가는 유탄에 건물이 맞아 허물어졌으나〈최후의 만찬〉은 그 와중에도 기적적으로 파괴를 면했다.
1954년 이 비운의 그림은 마침내 썩는 벽에서 분리되어 캔버스에 옮겨 그 이상의 부식은 멈추게 되었다. 1977년 이후 하루에 일 평방인치씩만 작업하는 과학적인 정밀 보수작업이 시작되었다. 회복된 부분은 오백 년 동안이나 쌓인 검은 먼지와 곰팡이, 접착제, 덮어 그린 페인팅 자국 등을 깨끗이 닦아내, 이제는〈최후의 만찬〉의 밝고 강렬한 색채와 견실하고 멋진 윤곽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사도들의 참된 성품들이 얼룩지고 흐릿한 채 선명하지 못했던 그 파괴된 그림 속에서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사도들은 우리가 그의 보존된 예비 드로잉들에서 찾을 수 있는 유형의 생동감 있는 개성이 살아 있는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인품과 얼굴 표정을 통해서 독자적인 생각과 시종일관하게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들에게 부여한 드라마에서 충실한 배역을 하고 있다.
예수님이 그의 고난을 앞두고 제자들과 고별의 최후 만찬을 갖는 이 극적인 장면의 전체적 구상과 그리스도와 사도들에 대한 다양한 인물의 성격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많은 시간과 깊은 생각을 했다. 흥분하고 동요하는 제자들과는 달리, 예수님은 조용한 침묵 속에 계신다. 독일의 미술사학자 하인리히 뵐플린은 이 침묵 속에서 강한 고전적인 양식을 발견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