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조선시대 당쟁과 예송의 재평가
- 최초 등록일
- 2006.06.18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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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교수님이 깐깐하셔서, 직접 참고문헌을 읽고 작성한 자료입니다
예송을 포함한 조선시대 당쟁에 대하여 처음 등장했다고 보아지는 선조때부터 탕평책이 실시된 영조때까지, 당쟁으로 인해 발생한 일들과 그 평가에 대하여 쓴 레포트입니다
아마도 당쟁에 대하여 총체적으로 정리하실수 있으리라 생각이됩니다
다른 레포트를 안보고 참고문헌을 통해 정리한 것이기에 자료의 일관성과 내용에 대해서는 걱정하시지 않아도 될 듯 합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당쟁의 배경과 사림정치의 개막
Ⅲ. 당쟁의 전개과정과 예송논쟁
Ⅳ. 당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
Ⅴ. 맺는말
본문내용
<본문 중 일부분>
....(중략).....두 번째 예송은 현종이 죽기 직전에 일어났는데 이를 갑인예송이라고 한다. 당시 현종의 어머니인 인선왕후가 죽어 그 때까지 생존해 있던 조대비가 입어야 하는 상복이 다시 문제가 된 것이다. 송시열에 이론에 의하면 둘째아들의 부인이므로 당연히 9개월복만 입으면 되지만, 현종은 자신의 직권으로 1년복으로 확정지은 뒤 서인 세력을 정계에서 축출했다. 예송 논쟁은 당시 상대적으로 세력에 약하여 어떻게든 이 문제를 왕통과 관련시켜 정치적으로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고자 했던 남인 세력과 경전을 그대로 해석하여 명분을 중시하는 송시열을 따라 확실한 위치를 점하고자 했던 서인 간의 이론을 앞세운 전형적인 권력 투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여기에 자신과 부모의 정통성을 확립하고자 했던 현종의 의지가 결합되어 나타난 결과라고 보아진다.
이러한 두 차례의 예송으로 인해 서인과 남인 사이에 당쟁의 골이 깊어져 숙종조에는 정권교체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또 이 당시에는 격렬한 정치전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람도 많아졌다. 숙종의 시기는 흔히 당쟁이 부정적인 의미로 변질된 시기라고 하는데, 아마도 잦은 정치세력의 교체가 일어나고 그에 따른 희생자들도 그 어느 왕조보다 많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중락)........
<맺는말 -결론부분>
지금까지 조선후기 당쟁에 대하여 선조조부터 영조조까지 살펴보았다. 너무나 방대한 당쟁과 관련된 사건들을 정리하고 평가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당쟁의 시기에 관해서도 의견이 분분해서 대세를 따라 선조이후 200년으로 처음에 보고 조사를 하였는데, 실제적으로 당쟁이 의미없는 세력싸움으로 부정적으로 보아지는 것은 예송논쟁이 벌어진 이후인 숙종과 경종 때로 보아진다. 원래 당쟁이란 말이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쓰인 것이 아니고 일본의 식민주의 사학자에 의해 일반화되었기 때문에 이 용어를 붕당정치로 바꾸어야한다는 논란도 있지만, 당쟁 자체가 나쁜의미를 담고 있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려는 식민주의사관에서 비롯된 인식을 전환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사림정치의 흥망과 운명을 같이한 당쟁은 사림들이 정국을 주도한 조선후기에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정치현상이며, 이로 인해 어느 한 쪽이 오랫동안 집권하며 정국을 쥐락펴락하는 일을 방지할 수 있었다는 데에서 필요한 다툼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당쟁과 함께했던 사림정치기가 끝나고 탕평정치를 지나 세도정치로 넘어가면서 조선왕조가 몰락의 길을 걸었다는 데에서도 당쟁의 긍정적인 측면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참고 자료
1. 이성무. {조선시대 당쟁사 1}. 서울:동방미디어, 2002
2. 이성무. {조선시대 당쟁사 2}. 서울:동방미디어, 2001
3. 이희환. {조선후기당쟁연구}. 서울:국학자료원, 1995
4. 이태진. [당파성론 비판], {한국사시민강좌}. 제1집. 서울:일조각, 1998
5. 신복룡. {한국정치사}. 서울:박영사,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