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비평]조선예술과 야나기 무네요시에 대한 연구 비평
- 최초 등록일
- 2006.06.11
- 최종 저작일
- 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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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 책은 이인범의 글로 조선예술과 야나기 무네요시에 대한 연구․비평 형식의 글이다. 사실 책 내용이 어려워 이해되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식민지 지배 하 제국주의 일본인 학자 야나기 무네요시에 의한 조선의 연구라는 점에서 관심의 대상이 될만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기 전 야나기 무네요시는 지배층의 국민으로서 피지배층인 조선을 긍정적으로 연구했다는 배경지식만 있었다. 그래서 이러한 사회 구조 속에서 조선의 긍정적 연구가 과연 이루어 질 수 있었는지 궁금하였다. 또 그의 연구가 식민지 지배 국가 국민으로 과연 객관적일 수 있었는지 의구심이 든다. 그럼 이 책을 통해 본인의 의문이 어느 정도 해결하되었는지 알아보겠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먼저 야나기 무네요시의 생애에 대하여 간단히 살펴보자. 그는 1889년 3월 21일 퇴역 해군소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리고 1961년 72세를 일기로 작고한다. 즉 그는 군국주의가 시대정신이 되었던 19세기 말 20세기 전반에 걸친 삶을 살았다. 야나기의 삶과 예술사상의 형성․전개는 서구예술론 수용기(1910-1916), 동양종교사상의 성립과 조선예술론의 전개시기(1916-1923), 민예이론과 민예운동의 전개시기(1924-1947), ‘불교미학의 수립기(1948-1961) 등 크게 네 시기로 구분된다. 그러나 야나기의 조선예술에 관한 글이므로 서구예술론 수용기는 간과하고자 한다.
야나기는 조선예술을 선과 백색을 근거로 한 비애미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는 중국예술에서 형, 일본예술에서 색, 조선예술에서 선이 두드러진 조형적 특징이라 판단한다. 비애미론은 정작 불상조각, 도자기, 건축물 등 조선예술에 관한 글들과는 오히려 무관한 것이다. 그것은 양식분석이나 예술학적 귀결이라기보다는 민족이 처한 비극적 상황이나 운명에 대한 의식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예술은 민족정신의 표현이며 조선예술은 조선민족의 마음의 표현이라고 본 그가 조선이 처한 고난에 대한 일종의 위로와 동정의 결과가 비애미인 셈이다. 또한 그가 이해한 조선역사는 식민사관에 의해 기술된 조선학 관련 서적 정도였는데, 책의 논지는 ‘어둡고 비참한 때로는 공포에 가득 찬 역사’였다. 그 결과 중국예술이 의지의 예술이고 일본예술은 정치의 예술인데 비해, 그 사이에서 혼자 비애의 운명을 져야만 했던 것이 조선예술이라 규정한다.
그러나 야나기의 비애미론은 많은 시비를 받는다. 박종홍은 고구려 벽화들에서 보이는 기상과 활달을 근거로 야나기의 이론을 비판한다. 고유섭은 조선의 고대미술이 생동성있고 청색 또는 백색이 그대로 청색 또는 백색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쥐어짜고 졸여짜서 굳건한 것을 통하여 구수하게 어우러진 변화성을 갖고 있다고 한다. 김달수는 백색의 미를 비애미론의 근거로 삼는 야나기의 근거를 문제로 지적했다. 김달수는 아무런 색도 갖지 않은 백색이 조선에서 주위의 다양한 색채로부터 자타를 구별하기 위한 불멸의 색, 궁극의 색이라고 이해했다. 그래서 그에겐 조선민족이 일찍이 고통 받고 의지할 곳 없는 역사적 경험 속에서 그것을 뚫고 나와 이르게 된 것이 백색이다. 김지하는 우리 미술의 본질이 선이라고 한 야나기의 의견을 문제 삼아 비판한다. 조선의 속화에서 연속성의 차단과 그 차단에 의한 공간의 역동화가 강하게 나타난다. 그는 단원, 혜원, 겸재 일파의 진경산수, 고구려 고분벽화, 수많은 속화에서도 연속성의 차단과 갈등을 읽어냈다. 따라서 조선예술에서 지배적인 것은 비애보다도 약동, 내면화보다도 저항과 극복을 고취하는 활력 남성적 특질이었다. 최하림은 야나기의 역사인식의 문제를 지적하였다. 그는 불운한 한국의 근대사만으로 한국미술의 특질을 결정한다든가 불운이 비애의 감정을 낳는다고 하는 사고방식은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보았다. 또한 선적인 요소를 동양 전체가
참고 자료
http://cafe.daum.net/homeos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