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한국 사회의 진보
- 최초 등록일
- 2006.06.09
- 최종 저작일
- 199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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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사회의 진보를 찾아서.
목차
1. 한국 사회의 진보를 찾아서
* 사회민주주의 개량주의
* 당원인가, 후원자인가
* 시민운동을 위한 단신
* 극우와 보수
* 인종주의와 지역주의
2. 한국의 보수와 진보 태도
3. 출처
본문내용
1. 한국 사회의 진보를 찾아서
진정한 보수 우익이 없다
* 사회민주주의 개량주의
‘사회민주주의는 개량주의이다.’ 과문의 탓인지 모르겠지만 이와 같은 주장, 또는 믿음이 한국의 진보 세력 일부 속에 여전히 깊숙이 뿌리박혀 있다. 틀림없이 ‘혁명’과 ‘개혁’을 대립적으로 보는, 오래 전부터 굳어진 시각에서 비롯된 것일 텐데, ‘개혁’은 간단히 ‘개량’으로 바뀌면서 곧바로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원래 뜻을 상실한 지 오래인 ‘개량’이라는 말 한마디는 대상이 무엇이든 담론과 토론의 장에서 단칼에 쫓아내는 퇴출 선고와 같은 것이었다. 아무튼 한국에서 사회민주주의는 그렇게 ‘혁명’에 대립되는 ‘개혁’ =개량=사회민주주의라는 구도에 의해 경멸당해 왔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사회민주주의는 지금 유럽 나라들에서도 홀대당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에서의 홀대는 우리의 경멸과 서로 반대 방향이다. 이 차이는, 좌파가 집권하고 있는 유럽 나라들과 달리 진보 세력의 대중적 기반이 허약하여 집권은커녕 국회에 의석 하나 차지하지 못한 우리 처지에서 볼 때 겹모순의 양상마저 보인다. 과연 영국의 블레어, 프랑스의 조스팽, 독일의 슈뢰더는 사회민주주의자인가? 그들이 좌파의 좌파들로부터 비판당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사회민주주의자이기 때문인가, 아니기 때문인가?
프랑스의 코페르니쿠스 학술 재단의 회장인 이브 살레스는 최근에 펴낸 책, ‘개혁과 혁명, 좌파의 좌파를 위한 제의’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만약에 조스팽, 블레어, 슈뢰더가 카우츠키, 조레스, 또는 레옹 블룸을 읽는다면 정치적으로 그들과 한 식구가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조스팽, 블레어, 슈뢰더가 사회민주주의의 깃발로 집권했지만 모두 사회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는 얘기다. 이렇게 유럽 나라들에서는 좌파 집권세력이 사회민주주의를 지키지 않는다고 비판당하고 있는 반면에 우리 쪽에서는 이를 경멸하는 경향마저 갖고 있는 셈이다. ..중략.
참고 자료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홍세화 저 (2002) 한겨레신문사
동아일보(2006. 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