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패왕별희, 현위의인생등을 감독한 천 카이거감독에 대한 감독론 입니다
목차
1. 영화인들의 세대 구별과 특징.
2. 천카이거 감독의 주요작품.
(1) <패왕별희>(覇王別姬)
(2) <현 위의 인생>(邊走邊唱)
(3) 황토지(黃土地)
3. 결 론
본문내용
천 카이거는 1952년 북경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영화감독이었고 어머니는 시나리오작가였는데 둘 다 북경 영화촬영소에 적을 두고 있었다. 1965년 북경 4중에 들어가기까지 평탄한 소년기를 보냈다. 그러나 중학 1년을 마친 66년에 시작된 문화대혁명은 그의 삶을 뿌리채 흔들었다. 홍위병이된 그는 혁명열기에 고취돼 아버지를 인민들 앞에서 자아 비판을 하도록 강요한다. 그는 그때의 행동에 대해 "인간의 존엄성을 잃은 시기에 저지른 과오로 내가 저지른 패륜은 지금도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스스로에게 비난을 가했다. 천 카이거는 홍위병 활동, 운남(雲南)성으로 하방되어 2년여의 벌목 작업, 군생활, 75년 북경 귀향 후 3년간 필름현상 노동자생활 등 13년에 걸쳐 문혁과 중국 현실을 온몸으로 체험하게 된다. 그는 78년 북경영화학교 감독과에 입학하여 4년간 수학하였다. 여기에서 이후 중국영화를 혁신, 세계적인 주목을 모으는 제 5세대 대표적 감돌들인 티엔 짱짱, 잔 춘차오, 장예모 등의 동급생과 교류하며 영화의 토대를 닦았다.
5세대 감독들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두 감독, 천 카이거와 장예모, 천 카이거는 중국영화사 속에서 조명하자면 이런 점들이 맨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규칙과 교과서에 대한 도전내용, 형식, 방법에 걸친 영화사상, 영화 전체가 그러하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장예모 감독이 `하나도 빼지 않고(一個都不少)`의 출품을 취소하게 되었다. 그 대신 천 카이거가 자리를 메우게 되었다. 칸 영화제의 본선 경쟁에 올라 있는 천카이거 감독이 <황제와 자객>, 천 카이거와 일본 니폰영화투자(NDF)의 이세키사토로가 <동업자>로 함세하는 등 활약을 하고 있다. 그러나 끊임없이 이들을 향해 연대의 손길을 보내고 있는 서방의 자본이 바로 이들을 고갈시켜 간다. 그렇다고 천 카이거나 장예모가 다시 중국 내부로 돌아가 작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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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식, <천 카이거의 현 위의 인생>
한겨레신문, 1997년 10월 21일
중앙일보, 1999년 5월 18일 41면 "칸진출 `황제의 자객`中·日과 합작 화제 야심 만만한 `꿈나무`"
중앙일보, 1999년 5월 13일 40면 "수준높은 예술작 풍성...`올 화두` 떠올라 中 천카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