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발해의 대외관계
- 최초 등록일
- 2006.05.30
- 최종 저작일
- 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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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제가 직접 자료찾아 작성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발해의 대외관계
1. 신라와의 관계
2. 당과의 관계
3. 일본과의 관계
4. 돌궐과의 관계
5. 회흘과의 관계
6. 실위와의 관계
7. 거란과의 관계
8. 흑수말갈과의 관계
Ⅲ. 맺음말
본문내용
Ⅱ. 발해의 대외관계
1. 신라와의 관계
발해와 신라의 관계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다. 그러나 기록이 없다고 해서 남북의 교섭이 전혀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특히 피지배 주민들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고 하겠다. 남북왕조가 교섭했다고 했다는 기록이 《三國史記》에 분명히 남아있고, 발해에서 신라로 통하는 신라도(新羅道)로서 신라 천정군(泉井郡)으로부터 발해의 책성부(柵城府)까지 39개의 역(驛)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록상에 전하는 몇 차례의 남북교섭은 신라 왕실의 정변 이후였던가, 아니면 발해가 외세로부터 위협을 받아 왕실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였다. 《삼국사기》에 나타나는 남북교섭에 관한 두 차례의 기록은 김부식 등도 중요한 사건이라고 인정하였기에 남겼던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남북국의 교섭은 기록상에 나타나는 접촉의 횟수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남북국의 문제는 서로 교섭을 하였는지의 여부보다는, 양국이 어떠한 이유로 교섭을 시도하였고 그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229년간 지속되었던 남북국의 관계는 교섭과 대립이라는 측면에서 대개 다섯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① 발해가 건국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20여 년간의 남북교섭기(698~713), ② 발해의 정복사업 추진기로서 발해의 제2대 무왕(武王)과 제3대 문왕(文王)의 집권 중기까지 60여 년간의 남북대립기(713~785), ③ 신라 원성왕(元聖王)과 헌덕왕(憲德王)의 정변이 중요한 계기가 되어 형성된 30여 년간의 남북교섭기(785~818), ④ 발해국의 고구려 땅 회복정책과 신라와 당의 밀착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남북대립기, ⑤ 발해 멸망기의 남북교섭기(905~926)가 그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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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규철, 『발해의 대외관계사』, 신서원,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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