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송명 시대에 중국의 사상계에서는 <성리학(性理學)>이 등장하였다. 성리학은 중국의 사상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사조로 발전하게 되는데, 선진 유학으로 돌아가자는 특색 때문에 <신유학(新儒學, Neo-Confucianism)>이라고도 불리게 되었다. 성리학은 20세기에 이르러 서양의 사상적 충격과 혁명적인 정치적, 사회적 변화로 인해 와해될 때까지 중국 사상의 핵심이 되었다. 이렇게 오랜 기간동안 사회 전반에 걸쳐서 영향을 끼쳤던 성리학은 중국의 사회구조와 학문 그리고 문화 전반에 걸쳐서 중국을 <용속화(庸俗化)>하는 방향으로 부정적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목차
Ⅰ. 봉건 전제주의를 옹호
Ⅱ. 학문의 경직화에 기여
Ⅲ. 금욕주의의 강조로 문화의 다양성과 창조성 억제
Ⅳ. 학문의 사변적, 관념론적 진행으로 세상과의 괴리
본문내용
주나라의 신분 사회는 제사 의식을 매개로 <가부장적 종족 공동체>로써 위계 질서가 잡혀 있었다. 점차 각 봉건 제후국이 미약한 제후국을 흡수하게 되었다. 힘을 가진 일부 세습 귀족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세습 귀족들이 몰락하고 경제적 부를 가진 농민과 상인 중심의 새로운 세력 집단이 나타났다. 지속적으로 세력을 가진 세습 귀족은 <군자(君子)> 혹은 <대인(代人)>이라 칭했고, 통치를 받는 사람은 <소인(小人)>이라고 불렀다. <군자>니 <소인>이니 하는 것도 본래는 봉건 사회 속에서의 귀천(貴賤)을 구분 짓는 명칭이었는데, 『논어』에서도 그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2) 이 군자와 소인은 봉건사회를 지탱해주는 큰 두 축이다. 그러나 공자의 시대에는 양자의 관계에 큰 충돌이 일어 사회적 혼란과 어지러움이 발생하게 된다. 공자는 이것을 <난(亂)>이라고 했다. 군자와 소인간의 갈등과 대립은 깊어지고, 사회 구조가 흔들리는 사회 상황을 공자는 사회적 위기로 간주하고,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복고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공자는 국가 정치를 함에 있어서 제일 먼저 <정명(正名)>을 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정명>이란 주례(周禮)를 척도로 하여 명분을 바르게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명분이란 개인의 정치적 지위와 신분 등급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군주와 신하, 아버지와 아들은 각자의 직분과 등급을 엄수해야 되므로,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는 것이다.
이러한 명분은 고대 중국 사회를 이끌었던 <종법제도>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종법>이란 가족을 중심으로 혈통의 원근을 근거로 하여 적서(嫡庶), 친소(親疎)를 구분하는 등급제도의 일종이다. 중국 사회에서는 국가보다는 가족이 중요한 단위를 이루어 왔으므로 혈연 관계를 연결 유대로 하고 혈연 관념을 정감 교류의 심리적 기초로 삼는다. 고대 중국인에게 있어 가족은 경제, 사회, 종교, 정치, 윤리의 중심지이면서 기초였다.
참고 자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편,『현대중국의 모색』, 도서출판 동녘, 1992.
김관도외 편, 『중국 문화의 시스템론적 해석』, 도서출판 천지, 1994.
김원중, 『중국 문화의 이해』, 을유문화사, 1998.
성균관대 유학과 교재편찬위원회, 『유학사상』, 성균관대 출판부,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