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삼국유사, 제왕운기의 단군신화 비교
- 최초 등록일
- 2006.04.22
- 최종 저작일
- 2005.09
- 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단군신화는 흔히 삼국유사에만 실려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제왕운기에도 그것이 실려있다. 이 둘의 차이가 어떠한지 직접적으로 나타냈으며 둘이 갖는 의미의 차이도 함께 실었다. 문헌을 쓰는 작가의 차이에 따라 내용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목차
▶ 《삼국유사》의 기록
▶ 《제왕운기》의 기록
▶ 두 기록의 내용 비교
▶ 《삼국유사》 기록에 대한 견해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속에 나타난 단군신화의 내용비교
본문내용
단군에 관한 내용을 전하고 있는 고려시대의 두 기록은 기본적인 내용에서는 비슷하나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삼국유사」와 「제왕운기」가 거의 같은 시기에 저술되었고, 또 이승휴는 일연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두 서적이 상당한 차이가 발견된다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2)
먼저 단군을 표현함에 있어 「삼국유사」에서는 ‘제단 단(壇)’자로 단군을 기록하고 있고 「제왕운기」에서는 ‘박달나무 단(檀)’자를 사용하여 그 의미를 각기 다르게 나타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학계에서는 후자로써 단군을 나타낸다.
두번째로, 「삼국유사」에서는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와 풍백?우사?운사를 거느리고 인간의 360여 가지의 일을 주관했다고 전하나, 「제왕운기」에서는 이 부분이 생략된 탓인지 언급이 없다.
세 번째로, 단군의 계보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 「삼국유사」에서 곰이 변한 웅녀와 환웅 사이에서 단군이 출생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제왕운기」에서는 단웅천왕이 손녀에게 약을 먹여 사람이 되게 한 뒤 단수신과 혼인시켜 낳은 아들이 단군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결과 웅조전승(熊祖傳承)이 빠진 셈이 되었다.
넷째,「삼국유사」에서는 고조선조에서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을 함께 기록하고 있으나, 「제왕운기」에서는 전조선(前朝鮮)이라는 항목에서 단군에 의한 조선을 기술하고, 후조선(後朝鮮) 항목에서 기자에 의한 조선을 언급하여 후속하는 위만조선과 함께 삼조선(三朝鮮)으로 구분, 파악하는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제왕운기」가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의 교체를 더욱 민족적 견지에서 해석하려 했음을 반영하고 있다.
다섯째, 단군의 후예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 「삼국유사」는 부여와 고구려만을 단군의 후예로 들고 있으나, 「제왕운기」에서는 고구려, 신라, 남북옥저(南北沃沮), 동북부여, 예맥(穢貊), 비류국(沸流國) 모두를 꼽고 있다. 이것은 「제왕운기」가 단군의 역사적 위치를 고조선의 개국시조일 뿐만 아니라 전 민족의 시조로서 크게 부각시키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차이점들로 볼 때 「제왕운기」는 「삼국유사」에 비해 단군의 신화적 성격은 상당히 축소시킨 반면에 국조(國祖) 내지 민족의 시조(始祖)라는 역사적 측면은 크게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그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