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고려사회는 귀족제 사회인가 관료제 사회인가
- 최초 등록일
- 2006.04.02
- 최종 저작일
- 20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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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사회는 귀족제 사회인가 관료제 사회인가
목차
Ⅰ. 서 론
Ⅱ. 귀족, 귀족제 사회의 개념
1. 귀족과 귀족사회의 개념
2. 귀족의 범주
Ⅲ. 고려사회가 귀족적 이라는 특징
1. 음서제도
2. 공음전
3. 폐쇄적 혼인
4. 권문세족
Ⅳ. 고려사회의 관료적 모습
1. 과거제의 성격
Ⅴ. 과거제도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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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서론
후삼국을 통일한 뒤 고려에는 아직도 지방에 독자적인 군사력과 경제적 기반을 가진 호족들이 존재해 중앙의 통치력이 전국에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고려왕조는 중앙 집권화 정책을 추진해 지방의 호족들을 통제하는 동시에 중앙 관리로 전환시키고자 노력을 하였다.
태조 때에는 호족들과의 혼인 정책을 비롯해 호족들에게 관계(官階)를 수여하고 토성(土姓)을 분정(分定)하고 기인 제도(其人制度)·사심관 제도(事審官制度)를 실시하었다. 광종 때에는 과거제도(科擧制度)를 처음으로 도입해 신진관료를 채용하는 한편 과감한 개혁정치로 호족세력을 견제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고려 왕조가 건국된 지 약 50년이 지난 성종 때에 이르러서 중앙 집권적인 정치 체제가 마련되고 국가의 기반이 확립되었다. 이때 처음으로 지방관이 파견되어 지방의 호족들을 통제 했으며, 최승로(崔承老)에 의해 유교 정치 이념이 채택되고 당의 제도를 모방한 중앙 정치 기구가 마련되었다. 이에 따라 호족들은 중앙 집권 체제에 편입되어 중앙의 관리로 전신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지방에 남아서 향리(鄕吏)로 격하되어갔다.
Ⅱ. 귀족, 귀족제 사회의 개념
1. 귀족과 귀족사회의 개념
중앙 집권적인 국가 체제가 확립됨과 동시에 사회적인 지배 세력이 형성되었다. 이들은 주로 지방호족 가운데 중앙의 관리로 진출한 계열과 신라 6두품 계통의 유학자들이었다. 이들은 그 자신뿐 아니라 자손들에 이르기까지 대대로 고위 관직에 올라 문벌 귀족(門閥貴族)으로 발돋움하였다. 이들 문벌 귀족은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막대한 토지를 점유해 경제적인 부를 축적하였다. 사회적으로도 제1신분으로서 여러 가지 특권을 누리면서 고려사회의 지배 세력이 되었다. 또한, 이들은 왕족을 비롯한 귀족 상호간에 폐쇄적인 통혼권(通婚圈)을 형성해 귀족신분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지방 향리의 자제들이 과거를 통해 끊임없이 신진 관료로 진출했고, 그 가운데 일부는 새로운 귀족 가문으로 성장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앞에서 계속 등장하는
참고 자료
☞이기백, 고려귀족사회의 형성, 일조각, 1990
☞유승원, 고려사회를 귀족사회로 보아야 할 것인가, 역사비평36, 1997
☞김용선, 고려음서제도연구, 일조각, 1991
☞노명호, 귀족제와 관료제(한국사특강), 서울대 출판부, 1990
☞두산백과사전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