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학사]제프리 초서의 생애와 문학작품
- 최초 등록일
- 2006.03.18
- 최종 저작일
- 20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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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영시의 아버지라 불리는 제프리 초서에 관해
그의 생애와 문학작품을 조사, 분석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시대상황
2. 초서의 생애
① 선조와 젊은시절
② 외교관, 공무원 활동
③ 중년기
④ 말년
3. 초서의 문학작품
① 프랑스기
② 이탈리아기
③ 영국기
4. 초서의 작품의의 및 특징
-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시대상황
Chaucer가 살던 시기인 14C,15C는 중세의 세계의 해체기였고 중세로부터 르네상스 시대에로의 과도기에 해당한다. 간헐적으로 계속되는 백년전쟁이 일어났으며, 14c초기에 악천후에 의한 대기근, 1348년 흑사병이 맹위를 떨치며 잉글랜드 전체인구의 1/3이 감소, 1381년에는 영주지배에 대한 농민층의 반항으로 6월 농민봉기가 일어났고, 1388년엔 잔혹의회가 일어났다. 중세의 사상은 실제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실을 따라가지 못했다고 하며, 중세 영국은 귀족계급과 일반평민계층 둘 사이의 어떤 계급도 인식하지 못했고, 그 신분은 태어나면서 동시에 결정이 되어 버리는 것이었으며 신분상승의 기회는 거의 없었다고 봐야했다. 그 와중에 중산계급층은 거대하게 증가하고 있었으며, 이 계층이 지속적으로 귀족계층에 편입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중상계층이 바로 Chaucer가 속해있던 계층이었다.
2. Geoffrey Chaucer(1343-1400)의 생애
① 선조와 젊은 시절
최소한 4세대에 걸쳐 Chaucer의 선조들은 영국의 중산층으로 런던이나 궁정과의 관계를 점차 증진시켰다. 초서는 런던의 중요한 포도주 상인으로 왕의 부집사였던 존 초서(John Chaucer)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런던의 실제 현실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라났다. 와인 판매상의 아들로서 집안 형편이 넉넉했고, 아버지의 교육적 열의에 많은 혜택을 받으면서 자랐지만 또 한편으로서는 서민층의 모습도 직접 보고 경험했다. 흔히 1340년에 초서가 태어났다고 하지만 1342년이나 1343년이 아마 더 옳을 것이다. 그가 그 당시의 중세영어뿐만 아니라 프랑스어도 유창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확실하지만 유년기 교육에 대해 알려진 것은 전혀 없다. 또한 라틴어와 이탈리아어에도 능숙했다.
초서는 1357년 에드워드 3세의 셋째 왕자인 라이어넬(Lionel)의 부인인 얼스터 백작부인의 시종이 되었다. 초서의 아버지가 아마도 왕가에 봉사하는 젊은 남녀집단에 아들을 가입시킬 수 있었던 것 같으며, 이것은 인생의 일대 전환점이 되어 이후에는 초서의 아들과 손녀가 각각 귀족과 혼인을 하게 됨으로써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였던 귀족계층과 평민계층 사이에의 다리가 놓여지게 되는 것이다.
참고 자료
- 옥스퍼드 영문학사, Andrew Sanders, 동인출판사
- 영문학사(사회와 문학), 김회진, 우용출판사
- 영미문학사, 김회진, 신아사
- 제프리초서, 영시의 아버지, 이근섭, 건국대학교출판부
<웹검색>
- http://blog.naver.com/chriskj?Redirect=Log&logNo=120011917354
- http://geoffreychaucer.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