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연암 박지원 (燕巖 朴趾源)
- 최초 등록일
- 2006.02.17
- 최종 저작일
- 20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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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연암 박지원에 모든것에 대하여 작성한 리포트 입니다. 여러 사료적 역사적 자료를 근거로 작성하였습니다.
목차
1.사상적 배경
2. 철학사상
3. 문학사상
4. 사회개혁론
본문내용
1.사상적 배경
박지원은 젊은 시절부터 글재주를 인정받았고, 주역에도 두각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자료 중 성리학과 관련하여 박지원의 사고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거의 없다. 그러나 주로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펼쳐지는 그 실학사상 이면의 철학적 사유에서 그의 사상을 살펴볼 수 있겠다.
박지원이 성장하고 활동하던 18세기에서 19세기 초까지의 시기는 성리학적 이상 국가 이념과 동아시아 중심의 세계관에 균열이 드러나기 시작하던 때였다. 박지원은 노론 낙학파의 명문에서 태어났지만 실제로는 권력층에서 소외된 힘없고 가난한 지식인들 중의 하나였다. 이러한 중간적 위치에서 그는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기를 즐겼는데 이를 통해 활발하게 변화해가는 서울의 개방적 흐름을 소화해낼 수 있었다.
ㄱ. 생애
박지원(朴趾源) (1737 ~1805)은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이다. 북학(北學)의 대표적 학자로, 그의 활동 영역은 소설·문학이론·철학·경세학(經世學)·천문학·병학(兵學)·농학 등 광범위했다.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중미(仲美), 호는 연암(燕巖)이다. 그의 가문은 노론(老論)의 명문세신(名門世臣)이었지만, 그가 자랄 때는 재산이 변변치 못해 어려운 형편이었다. 그는 영조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으면서도 척신(戚臣)의 혐의를 피하고자 애썼으며 청렴했던 조부의 강한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다. 1752년 이보천(李輔天)의 딸과 결혼했다. 그의 처삼촌이며 이익(李瀷)의 사상적 영향을 받았던 홍문관교리 이양천(李亮天)에게서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3년 동안 문을 걸어 잠그고 공부에 전념, 경학(經學)·병학·농학 등 모든 경세실용의 학문을 연구했다. 특히 문재(文才)를 타고나 이미 18세 무렵에〈광문자전 廣文者傳〉을 지었다. 1757년〈민옹전 閔翁傳>을 지었고, 1767년까지〈방경각외전〉에 실려 있는 9편의 단편소설을 지었다.
ㄴ. 저작
저서에 《열하일기(熱河日記)》,《연암집(燕巖集)》,《과농소초(課農小抄)》,《한민명전의(限民名田義)》 등이 있고, 작품에 《허생전(許生傳)》,《호질(虎叱)》,《마장전(馬埋傳)》,《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민옹전(閔翁傳)》,《양반전(兩班傳)》등이 있다
• 열하일기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팔촌 형 박명원을 따라 청나라로 가서 그 곳에서 보고 느낀 것을 자세히 기록한 일기형식의 글이다. 청나라의 농사법, 세계 여러 나라의 소식, 신식 기계 등을 소개하였다. 그는 이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조선의 문물제도를 과감히 개혁할 것을 주장하였다. 건륭제의 칠순연을 축하하기 위해 1780년 그의 피서지인 열하(熱河·현재 중국 허베이성 청더·河北省 承德)를 다녀온 것을 기록한 여행기로서. 열하에는 18세기 초 건립된 청나라 이궁(離宮=별궁)이 있었다. 박지원은 팔촌형님이던 정사(正使) 박명원(1725~1790)을 수행하는 자격으로 청으로 갔다
참고 자료
한국사상연구회,『실학의 철학』,예문서원,1997,p.295-p.317
한국인물유학사편찬위원회,『한국인물유학사』, 한길사, 1996, p.1573-p.15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