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1945~1950 中 희곡
- 최초 등록일
- 2006.02.07
- 최종 저작일
- 199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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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45년부터 1950년까지 희곡사정리입니다.
목차
1.1945년부터 1950년까지 문학적 상황
2. 우리의 희곡사(연극사)적 흐름을 보면 몇가지 문제점
3. 작품으로 보는 우천과 동랑의 모습 비교
4. 우천과 동랑의 차이
5. 우천 오영진의 희곡사적 위상
본문내용
근대희곡사에서 1945년부터 1959년까지는 이념의 대립이 가장 첨예했던 시기다. 광복 이후 40년대 말기까지의 희곡과 연극은 친일극활동의 반성과 식민지적 잔재의 청산 및 새 시대에 부합되는 창작활동의진작이라는 커다란 명제를 앞세워 전개되었지만, 실제로 이 시기의 희곡창작과 연극운동에있어서 연극인들은 각기 좌익과 우익, 혹은 중도파로 갈리어 극심한 이념 대립, 방법론의 차이와 혼미를 드러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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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나라의 희곡사가 암울했던 그 가운데 신패효라든가, 김우진, 현철, 박승희, 유치진, 오영진, 차범석 등 유능한 인재가 있었기에 우리의 연극문화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유민영, 전통극과 현대극, 180쪽
다만 이들의 업적은 대게 자료중심의 실증적 연구에 그쳤다. 특히 오영진에 대해서 정신사적 탐구로 어떤 업적을 남겼는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거의 같은 시대에 활동을 했던 유치진과의 공통점 및 상이점을 비교해 가면서 그 위상을 논하고자 한다.
동랑 유치진은 우천 오영진보다 열한살이 많지만 교육과 예술활동은 거의 같은 기간에 이루어졌으며 같은 해에 작고 했다. 동랑과 우천은 창작에서부터 연출, 비평, 연기, 경영, 교육에 이르기까지 폭넒게 활동했던 예술인이라는 점이 같다. 동랑은 민중극이란 민중의 고통, 불안, 희망, 투쟁을 한곳에 모은 것이고, 무지한 민중을 계목하는 수단으로서는 연극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이라는 롤랑의 말에 동감하고 연극을 택했다. 때문에 그는 연극을 공리적인 눈으로 보게 했고, 민중 계몽의 수단으로 여기에 했으며 계몽주의로 일관케 하는 정신적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그에 비해 우천 오영진은 민족지도자들(도산과 고당)에게 영향을 받았고, 도 국문학을 전공했다거나 영화까지 택했다는 것부터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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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한옥근, 오영진연구, 시인사, 1993
이상우, 유치진연구, 태학사, 1997
김윤식, 해방공간의 문학사론, 서울대출판부, 1989
유민영, 한국현대희곡사, 홍성사,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