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학]조선의 근대화와 청일전쟁
- 최초 등록일
- 2005.12.20
- 최종 저작일
- 2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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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청일전쟁의 양상분석과 조선의 근대화간의 관계를 밝힌다.
목차
서론 : 조선 후기
청ㆍ일전쟁의 상징적 의미 1. 전근대와 근대의 대결
청ㆍ일전쟁의 상징적 의미 2. 서양과 동양의 대결
조선의 근대화와 일본의 의한 근대화
맺음말 : 청ㆍ일 전쟁 이후
본문내용
오늘날까지도 한국사를 나누는 고대-중세-근세-근대-현대란 구분 방법과 구분사는 서양사를 연구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다. 서양의 역사발전의 단계를 나누는 구분사로 르네상스 시기때부터 당시 역사가들이 근대라고 명명하며 암흑의 중세, 찬란한 문명의 고대 그리스 로마라고 명명하면서 시작된다. 그 이후 서양에 의한 동양의 연구, 왜곡 등이 진행되며 서양의 시대구분사 혹은 역사발전사를 동양에 그대로 주입하면서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으며 동양의 역사발전단계가 서양의 역사발전단계와 완전 무관한 것이 아니라는 점과 동아시아3국의 근대화시기 때 서양의 영향도 크다는 점을 비추어 보았을 때 조선의 근대라는 것을 탐구할 만한 가치를 갖는다.
조선 후기 농업의 비약적 성장으로 인한 잉여와 그것의 자본주의적 교환이 이루어진다. 광업도 국가적 차원에서 민간인에 의해 이끌어져간다. 실학으로 인해 조선의 민중의식이 상승되며 다른 나라의 근대화와 비슷한 발전단계를 거치게 된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의 집권으로 인해 봉건체제에 대한 유지와 그 안에서의 사회모순의 확산방지와 개혁이 이루어지며 조서의 근대는 혁명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 와중에 일본에 의한 항구가 개방되어 거류지무역이 실시되고 조선의 상업 특히, 대외무역 분야에서 양적 성장을 가져온다. 당시 일본보다 청나라와 많은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쇄국 정책을 펴고 있던 조선으로서는 긴장되는 일이 아니라 할 수 없다. 게다가 당시 일본 자국내의 공업화와 관련하여 시장을 찾던 일본은 조선이라는 자본주의의 씨앗이 피면서 다른 나라와는 교역을 주로 하지 않았던 곳을 찾아낸 것은 일본상품의 수입이 급증하게 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그 이전 강화도 조약과 조일 수호 조약 등의 불평등 조약 등으로 일본의 영사 재판권, 일본 화폐의 사용권, 일본의 수출입 상품의 무관세 등은 조선의 상인과 국가에 악재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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