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연암박지원과 열하를 가다를 읽고..
- 최초 등록일
- 2005.12.15
- 최종 저작일
- 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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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22년 전인 1780년 여름, 연암 일행은 장마로 강물이 불어난 탓에 열흘째 의주에 머물고 있다. 비가 내리다 쾌청해진 지도 나흘이나 지났는데 백두산 부근에 장마가 졌는지 강물은 오히려 불어나고 있다. 6월 24일 정사 박명원은 드디어 강을 건너기로 결심하고 한양으로 보내는 장계에 날짜를 써넣었다. 건륭제의 칠순 행사일인 8월 13일 이전에는 북경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날의 연암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연암도 이날 아침 간편한 군복으로 말을 타고 숙소를 떠난다. 말은 ‘자줏빛에 흰 정수리, 날씬한 정강이에 높은 발굽, 날카로운 머리에 짧은 허리, 더구나 두 귀가 쫑긋한 품이 참으로 만 리를 달릴 듯싶은 명마’다. 마부 창대昌大가 견마를 잡고, 하인 장복長福이 짐을 지고 뒤를 따른다. 안장에는 주머니를 달았는데 왼쪽에는 벼루를 넣고 오른쪽에는 거울, 붓 두 자루, 먹 하나, 조그만 공책 네 권, 이정표 하나를 넣었다. 이것이 연암의 개인 소지품 전부다.
목차
▣ 차례
1장 국경에 서다
2장 요동벌 1,200리
3장 산해관을 향해
4장 세계의 중심 북경
5장 만리장성을 넘어
본문내용
나를 포함한 일행 중 몇몇은 여행 중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밤거리를 쏘다니며 ‘밤 연행’을 했다. 우리는 낯선 중국의 밤거리를 다니며 중국인들의 50년 후를 예측하거나 좌판에 앉아 노린내 나는 양고기 꼬치구이를 먹으며 한국의 정치 상황을 논했다. 개방 이후 번성하는 향락 산업을 보고 혀를 차기도 했으며, 마을 광장에서 빠른 음악에 맞춰 원을 그리며 춤추는 북방 소수민족들의 놀이판에 끼기도 했다. 이런 일들은 모두 밤에 이루어졌고 우리는 결과적으로 풍성한 기억을 간직하게 됐다. 연암 전문가 김혈조 교수는 “연암은 밤에 중국을 보았다”라며 우리들에게 밤 연행의 중요성을 이야기했고, 연암의 발길을 쫓는 우리들은 당연히 밤에 중국을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