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중세사]권문세족과 신진사대부 비교 고찰
- 최초 등록일
- 2005.11.27
- 최종 저작일
- 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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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후기 권문세족의 성장배경과 권력구조의 형태, 이어 권문세족의 대항세력으로 선택된 신진사대부의 성장과정을 살펴본다.
권문세족과 신진사대부의 성격을 고찰하여 비교할수 있고, 개혁정책 추진세력으로서의 신진사대부의 역할을 알수있다.
목차
1. 권문세족의 성립과 그 성격
(1) 세족층의 형성과 그 특징
(2) 고려 후기 권력구조와 세족
(3) 고려 후기 사회모순의 심화와 세족층의 동향
(4) 고려 후기 세족의 역사적 성격
2. 신진사대부의 대두와 그 성격
(1) 신진사대부의 대두 배경
(2) 사대부의 성격과 용어에 대한 논의
(3) 사대부의 성격과 시기구분
3. 개혁정치의 추진과 신진사대부의 성장
(1) 개혁정치의 추진
(2) 개혁정치의 성격
(3) 신진사대부의 성장
본문내용
1. 권문세족의 성립과 그 성격
무신란 이후 문신 중심의 폐쇄적 문벌지배체제가 와해되면서 고려 후기에는 여러 갈래의 출신기반을 갖는 인물들이 지배세력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그러한 지배세력들 중 권문세족은 농장을 형성한 대토지 소유자들로서, 관료진출도 과거보다는 음서에 의존하는 등 문학적․유교적 소양과는 거리가 먼 비문비유적(非門非儒的)성향의 소유자들이었고, 원과 결탁하거나 도평의사사를 장악하여 권력을 행사함으로써 이 시기 왕권은 상대적으로 약화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이해되었다. 권문세족에 대한 이러한 범주 설정과 성격 규정은 이를 신흥사대부와 차별화시켜, 고려 후기 정치사를 이들 사이의 세력관계와 정치과정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권문세족과 사대부에 대한 재검토가 이루어지게 되면서, 권문세족과 관련해서 ‘권문(權門)’과 `세족(世族)‘은 그 지칭하는 대상을 달리해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즉 권문은 가문배경에 관계없이 권력층이 된 부류를 지칭하는 것이라면, 세족은 당시 사회적 지위를 누르고 있었던 문벌가문을 지칭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고려 후기 사회세력으로서 최고 지배층을 굳이 개념화하려면 이를 ’세족‘으로 지칭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1)세족층의 형성과 그 특징
고려 후기에 세족층에 해당하는 가문들이 문벌로 등장한 시기와 유형은 가문에 따라 조금씩 달랐다. 무신집권기에 이미 문벌로 등장한 가문이 있는가 하면, 무신집권기 때부터 관료를 배출하다가 원간섭기 초에 세족으로 성장한 가문도 있었고, 여말에 가서야 비로소 세족이 된 가문도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세족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기반이나 가세를 신장시키는 방법도 다양하였다. 이미 확보한 문벌적 지위를 지속시킨 경우가 있고, 무신 집권기 또는 원간섭기에 관료배출을 집중시켜 세족으로 성장한 가문이 많았으며, 무반에서 출신하여 전공을 세웠거나 국왕 측근세력으로 활동하면서 가세를 신장시켜 세족이 된 가문들이 있었다.
참고 자료
한국중세사학회, <고려시대사강의>, 도서출판 늘함께, 2001
한국역사연구회, <한국역사입문2>, 풀빛
박영규, <조선왕조실록>, 들녘, 2002
변태섭, <한국사통론>, 삼영사,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