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삼국사기 초기기사는 과연 믿을만한가?
이에 대해 긍정론과 부정론에 대한 연구사적인 검토!
목차
Ⅰ. 서 론
Ⅱ. 삼국사기의 편찬동기와 사관
Ⅲ. 연구사검토
1) 고려시대 2) 조선시대
3) 근대 민족주의 사학자 4) 일본인들에 의한 연구
5) 광복 후 국내학계 - (1) 불신설 (2) 긍정론
Ⅳ.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三國史記」는 史書의 성격 자체가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는 「三國史記」가 朝鮮 조 이래 官撰史書로서 우리 古代史를 기술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史書로서 인식되어 왔기 때문임은 물론이다.
오늘에 이르러 물론 「三國遺事」가 있긴 하나 「三國史記」는 우리 古代史의 체계를 세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史書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三國史記」가 담고있는 史料를 근본으로 하여 우리의 古代社會를 이해할 수 밖에 없으므로 「三國史記」의 記錄, 특히 그 初期 부분의 것이 信憑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비단 그 시기의 韓國의 家族制度를 포함한 社會構造・政治・經濟・文化・宗敎 등을 追跡할 수 있는가 없는가와도 직결되는 중대한 문제이며, 동시에 良心的・客觀的으로 日本의 國家起原, 古代의 韓日關係, 渡來人 등을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는가 없는가와도 직결되는 중대한 문제이기도 함은 더 이상 말할 나위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三國史記」의 初期記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三國史記」의 史料的 價値에 대한 하나의 논문으로서의 논의는 1884년의 那珂通世의 「朝鮮古史考」부터 치면 100년간, 津田左右吉의 史料批判부터 치면 60여년 동안 日人들에 의하여 수많이 행해졌으나 國內學者에 의한 논의는 그다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기이하게도 日人에 의한 批判은 거의 전부 「三國史記」의 初期記錄은 造作되었다는 것이고 또한 이 日人들의 批判이 사실인가 아닌가의 여부를 따져 보는 批判도 한두 사람의 序說的인 것을 제외하고는 全無한 상태에 있다. 그래서 여기서는 日人들에 의한 「三國史記」의 批判을 고찰의 대상으로도 삼고, 또한 거기에 대한 그동안의 國內學者의 見解도 아울러 살펴보기로 하겠다.
그간의 「三國史記」에 대한 논의는 否定과 肯定의 양 극단을 치닫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史料의 改筆・潤色의 문제에 대해 감정적인 면에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그 간의 논의를 정리하고 「三國史記」에 대한 시각을 정리하고자 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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