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중국사에서의 환관의 존재와 그 활동
- 최초 등록일
- 2005.11.24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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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사에서 환관의 존재 의미와 시대별로 환관의 활동을 알아보고,
한국에서의 환관과 비교 분석하여 환관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밝혔습니다.
비교적 많은 내용을 참고하고 꼼꼼하게 정리했습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환관은 어떠한 존재인가?
Ⅲ. 중국사의 환관
(1) 한대(漢代)
(2) 당대(唐代)
(3) 명대(明代)
(4) 청대(淸代)
Ⅳ. 한국의 환관제도
Ⅴ. 맺음말
본문내용
환관(宦官)이란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거세(去勢)를 당하고 궁중에서 봉사하던 남성 관료를 지칭하는 말이다. 인위적인 거세로 인해 이들은 남성 구실을 할 수 없었고, ‘제3의 성’으로 정상적이지 못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다. 환관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무소불위의 신권적(神權的) 권력을 가진 군주정치 체제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로 궁녀들과의 간통을 방지하는 동시에 궁궐 내의 노동력을 확보하는 등의 필요성에 의해 거세한 남성들이 필요했는데, 이들의 역할과 영향력은 그 필요성을 뛰어넘어 권력의 실세가 되기도 하였다. 중국의 환관은 대부분 스스로 자원하여 거세한 남성들이었다. 그들이 자원하여 환관이 되기 원한 이유는 출세욕 때문이었다. 미천하거나 가난한 집안 출신은 출세의 길이 막막했다. 이렇게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던 사람들에게 환관이 되어 궁중에 들어간다는 것은 유일한 희망이었던 것이다. 명대(明代) 천계(天啓) 정덕(正德) 연간 1621년에는 결원된 환관을 충당하기 위해 3천명을 모집했는데, 지원자의 수가 2만 명이 넘었던 사실에서 이를 살펴볼 수 있다.
황제와 환관은 서로 의존적인 관계에 놓여 있었다. 황제와 환관은 궁중에서 일생을 살아야하는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로 환관은 황제의 가장 측근에서 황제를 보필했으므로 속마음을 가장 잘 알았고, 황제 또한 환관을 신임하고 총애하여 이들 사이에는 각별한 신뢰감이 발생하였다.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환관은 황제의 비서실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환관들은 관료(官僚)나 외척(外戚) 등 다른 정치적 집단에 비해 단결력이 강했고, 이들의 권력을 제어할 사람은 황제 말고는 거의 전무했다. 환관이란 존재는 전제 군주 정치의 부산물로 중국 역사에서는 전제 군주 정치가 극대화 되었던 왕조일수록 환관의 정치적 권력도 확대되었다.
환관은 황제의 측근에서 보좌하고, 황궁의 살림살이를 책임졌으며 그 외에 매우 여러 가지 직무를 행했다. 명대 말엽의 환관 유약우(劉若愚)가 쓴 『작중지(酌中志)』에는 궁중 내에서의 환관의 업무에 대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참고 자료
장희흥, 「조선전기환관연구」, 동국대석사학위논문, 1993
서연달, 『중국통사』, 청년사, 1998
이근명, 『중국역사』, 신서원, 2002
박인수, 『환관』, 석필, 2003
정구선, 『중세 시대의 환관과 공녀』, 국학자료원,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