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친일파, 근현대사]친일파에 대한 조사(우범선)
- 최초 등록일
- 2005.11.21
- 최종 저작일
- 199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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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친일파에 관한 내용으로 우범선을 다루면서 그의 아들 우장춘 박사의 내용도 같이 담았습니다..표지까지 있는 자료이니 많은 이용 바랍니다.
목차
1. 서론
2. 개화사상의 수용과 별기군 참여
3. 왕후 시해 주도
4. 고영근의 우범선 처단
5. 우장춘의 발자취
6. 결론
(1) 친일파 후손의 땅찾기
(2) 우범선과 우장춘
☞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서론
우리는 흔히 친일파라 하면 을사오적을 떠올리게 되고 단순히 우리나라를 배신한 사람으로 취급하기 마련이다. 그들에 대한 확실한 정보도 없이 다만 좋지 못한 행동을 한 사람이라고 단정 짓기보다는 그러한 친일파들에 대한 사람들의 올바른 정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이 어떠한 의미에서 친일파로 인식되어 왔으며 왜 그들이 우리사회에서 비난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한다.
2. 개화사상의 수용과 별기군 참여
우범선은 1857년 5월 출생하여 어릴 때부터 한학을 배웠으며, 그의 집안은 대대로 무인의 집안이었다. 따라서 그는 어릴 때부터 병법에 관해 수업을 하였으며, 20세가 되던 해인 1876년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무과 급제 이후 곧 황해도 청단찰방에 배치되었으며, 강화도 조약으로 조일간에 새로운 시대가 열리자, 우범선은 동양의 대세와 조선의 앞날을 생각하며, 개화사상을 가진 김옥균, 이주회 등과 교유하면서 개국론을 주장하였다. 조선의 국교가 열리고 근대화운동이 한참 벌어지던 때 조선 정부는 군사력을 강화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군제 개편에 착수하였는데, 그것이 이른바 별기군의 창설이었다.
5. 우장춘의 발자취
아버지 우범선이 암살 되던 시기는 그의 나이 4살 때였다. 그 후 우범선의 동생이 태어났고, 미망인의 몸으로 두 아이를 키우기 벅찼던 어머니는 몇 년 동안 그를 희운사에 맡겼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그를 데려오기 위해 노력하였고, 그러한 우장춘의 어머니는 그 시대의 보기 드문 현명한 어머니상으로 한국 사람들로부터 여러 전설을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어머니에게서 엄격하게 자라난 우장춘은 마침내 훌륭한 학자가 되었고,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조국인 한국에 봉사 했다는 것이다.
참고 자료
최문형,“명성황후 시해의 진실을 밝힌다”, 지식산업사, 2001
쓰노다 후사코, “우장춘박사 일대기 조국은 나를 인정했다”, 교문사, 1992
반민족문제연구소, “친일파99인-1”돌베개, 1993